효과를 두고 적지 않은 사전 논란이 빚어졌지만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예상대로 3일(현지시간) 국채 매입을 통한 양적완화 계획을 발표했다.

국채 매입 규모가 당초 시장 예상과 부합해 충격은 덜했지만 앞으로 수개월 동안 성장률과 인플레이션 추이를 감안해 추가 조치를 내놓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어 그 파장에 주요국 통화당국과 투자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벤 버냉키 FRB 의장은 어렵게 다시 꺼내 든 칼인 만큼 정책 효과를 거둘 때까지 양적완화 조치를 밀어붙일 태세다.

이렇게 되면 미 달러 약세를 가속화시켜 한국 일본 등 주요국 통화당국으로서는 자국의 화폐가치 급등에 비상이 걸리게 된다. 미 달러 약세는 국제유가와 상품 가격 급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 경영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국제유가는 8월 말 이후 15% 상승했다.

◆실제론 9000억달러 풀리는 셈

FRB는 이날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직후 내놓은 성명서에서 내년 6월 말까지 매월 750억달러어치씩 총 6000억달러 규모의 국채를 매입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8월 FOMC 회의 때 결정했던 FRB 보유자산 중 만기분 재투자까지 포함하면 국채 매입규모는 크게 늘어나게 된다. FRB는 월평균 350억달러 규모의 모기지 증권이 만기가 돌아올 것으로 예상했다.

경제 상황을 감안해 자산 매입 규모와 속도를 조절한다고 해도 내년 6월까지 FRB는 약 8800억달러 규모의 국채를 매입,돈을 풀게 된다.

시장에서 국채를 매입하는 뉴욕 연방은행에 따르면 매입 대상 국채는 대부분 2~10년물이 될 전망이다. 30년 만기 국채도 매입 대상에 들어 있지만 규모는 제한적일 전망이다. 시장에서는 매입 국채의 만기가 평균 5~7년 정도 될 것으로 예상한다.

◆수요 살려 경기회복 실업 해소 기대

FRB가 돈을 찍어내 시장에 있는 국채를 매입하려는 것은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자극해 수요를 확충하려는 게 목표다. 수요가 살아나면 미국 경제가 본격적인 회복 국면에 들어서고 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미 통화당국자들은 바람직하지 않을 정도로 낮은 물가가 단기적으로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우려를 키우는 등 미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판단한다. 미 통화당국자들은 직전 FOMC 회의에서도 현재 연 1% 에 불과한 물가 상승률을 비공식 내부 목표인 2%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버냉키 의장은 4일자 워싱턴포스트지 칼럼을 통해 "금융 시장 여건을 개선하는 결과를 가져온 양적완화 조치가 이번에도 효과를 거두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호주 인도 등 뛰는 물가를 잡기 위해 통화 긴축에 나선 국가들과는 대조적으로 미국은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자극하기 위한 통화 정책을 당분간 지속할 전망이다.

◆정책효과 전망 엇갈려

월스트리트저널은 FRB 내부의 추정을 인용해 이번 양적완화 조치가 단기 금리를 0.75%포인트 낮추는 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보도했다. 정상적인 통화정책을 통해 연방기금 금리를 0.75%포인트 낮추면 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바클레이즈캐피털의 로렌스 캔터 리서치헤드가 "양적완화 조치로 경기 부양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평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금리 인하는 경제 주체들의 차입 부담을 덜어줄 뿐 아니라 미 달러 가치를 떨어뜨려 수출활성화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금리가 많이 떨어진 상황이어서 정책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란 분석도 적지 않다. 조사회사인 매크로이코노믹어드바이저스는 FRB가 1조5000억달러어치의 국채를 매입해도 내년 말까지 미 실업률을 0.2%포인트 낮추는 데 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15조달러 규모의 경제를 6000억달러 국채 매입으로 움직이기는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손성원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는 "미 은행의 초과준비금이 1조달러에 달하는 상황에서 FRB의 국채 매입이 경제활성화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얀 하지우스 골드만삭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단기적으로 정책효과를 거둘 수 없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경제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