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인구센서스 '통계의 마술' 경계를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숫자 맹신하면 현실왜곡 부작용
객관적 자료 따른 정책개발 중요
객관적 자료 따른 정책개발 중요
1980년대 말 미국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해프닝이다. "35세 이상 독신여성이 결혼에 성공할 확률은 교통사고로 사망할 확률보다 낮다. " 황당하기 그지없는 제목의 기사가 주요 일간지를 장식했다. 당시 기사를 접했던 노처녀들이 공포(?)를 느낀 나머지 서둘러 결혼시장으로 들어서는 웃지 못할 일이 전개됐다. 후일 통계 출처를 추적해 가다보니,기사 속 35세 이상 여성은 미국 최고의 명문대를 졸업한 뒤 경영 및 법조계로 진출한 소수의 엘리트를 지칭했던 것으로 나타났고,이들의 결혼 확률이 그만큼 낮음을 강조하기 위한 은유로 교통사고 사망률이 인용됐던 것으로 밝혀졌다.
대학 시절 사회통계 수업 첫 시간에 교수님께서 들려주셨던 이야기가 있다. "숫자를 불신해서도 곤란하겠지만 맹신은 더욱 곤란하다.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온다(garbage in garbage out)."
실제로 통계 숫자가 야기하는 미혹을 이야기하자면 그 리스트가 제법 길어진다. 2004년 한국의 이혼율이 47.4%로 발표되자 일부 매체에선 '2쌍 중 1쌍 이혼 시대'란 선정적 제목을 달아 가족해체를 경고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그러나 이혼율이란 '인구 1000명 당 결혼한 쌍 대비 이혼한 쌍의 비율'을 계산하는 것이기에,어떤 해에 결혼한 쌍에 전체 연령대의 이혼한 쌍을 대비시킨 47.4%는 허황된 수치다. 물론 같은 방식으로 측정했음에도 1980년엔 불과 5.9%에 머물렀던 이혼율이 25년여 만에 6배 이상 증가했음은 필히 주목해야 하지만 말이다.
1990~2002년 중 초혼남 · 재혼녀 커플이 전체 혼인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3%에서 5.6%로 2배가량 증가했다는 사실도 세인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한데 내막인 즉 도시보다는 읍 · 면 지역에서 이들 새로운 커플이 다수 등장했던 바,이는 농촌 총각의 결혼난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현상이었건만,내막은 가려진 채 호기심만 자극했던 셈이다.
합계 출산율 수치도 우리를 현혹시키긴 마찬가지다. 결혼한 부부의 출산율을 따져보면 최근 5년간 그다지 큰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 반면에 20대 후반~30대 초반 '적령기' 여성의 결혼율 자체가 꾸준히 감소하면서 출산파업에 직접적 영향을 미쳤음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또 여성의 소득수준이 높아질수록 출산율이 낮아지는 한편으로 저소득층 및 다문화가족의 출산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음은 정부의 출산장려정책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니겠는지.
통계의 힘을 빌려 사회적 통념으로 고착화된 고정관념의 리스트도 주목을 요한다. 일례로 '여성의 이직률이 높은 이유는 직업의식이 낮기 때문'이란 통념에 넓은 공감대가 확보돼 있으나 실제 근무조건이 좋은 직장에서는 남녀의 이직률 차이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결손가족일수록 청소년 비행률이 높다'는 편견 또한 빈곤 환경이 가족의 결손율을 높이고 청소년 비행률도 높인다는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그릇된 가(假) 관계로 판명됐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정확하고 객관적인 데이터를 토대로 현실적합성이 높은 정책을 개발하고 이를 실행에 옮김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번 인구센서스에선 저출산 고령화의 강도 높은 도전에 직면한 한국 사회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중심으로 정책의 우선순위를 결정할 수 있도록 가감없이 현실을 담아내길 희망한다.
통계의 마술에 걸려 현실을 왜곡 인식하게 된다면 이는 천문학적 자원의 낭비를 가져올 것이요,통계가 교묘히 감추고 있는 부분이나 미처 포착하지 못한 부분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이 또한 우리의 권리를 포기하고 책임을 유기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함인희 <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
대학 시절 사회통계 수업 첫 시간에 교수님께서 들려주셨던 이야기가 있다. "숫자를 불신해서도 곤란하겠지만 맹신은 더욱 곤란하다.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온다(garbage in garbage out)."
실제로 통계 숫자가 야기하는 미혹을 이야기하자면 그 리스트가 제법 길어진다. 2004년 한국의 이혼율이 47.4%로 발표되자 일부 매체에선 '2쌍 중 1쌍 이혼 시대'란 선정적 제목을 달아 가족해체를 경고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그러나 이혼율이란 '인구 1000명 당 결혼한 쌍 대비 이혼한 쌍의 비율'을 계산하는 것이기에,어떤 해에 결혼한 쌍에 전체 연령대의 이혼한 쌍을 대비시킨 47.4%는 허황된 수치다. 물론 같은 방식으로 측정했음에도 1980년엔 불과 5.9%에 머물렀던 이혼율이 25년여 만에 6배 이상 증가했음은 필히 주목해야 하지만 말이다.
1990~2002년 중 초혼남 · 재혼녀 커플이 전체 혼인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3%에서 5.6%로 2배가량 증가했다는 사실도 세인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한데 내막인 즉 도시보다는 읍 · 면 지역에서 이들 새로운 커플이 다수 등장했던 바,이는 농촌 총각의 결혼난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현상이었건만,내막은 가려진 채 호기심만 자극했던 셈이다.
합계 출산율 수치도 우리를 현혹시키긴 마찬가지다. 결혼한 부부의 출산율을 따져보면 최근 5년간 그다지 큰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 반면에 20대 후반~30대 초반 '적령기' 여성의 결혼율 자체가 꾸준히 감소하면서 출산파업에 직접적 영향을 미쳤음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또 여성의 소득수준이 높아질수록 출산율이 낮아지는 한편으로 저소득층 및 다문화가족의 출산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음은 정부의 출산장려정책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니겠는지.
통계의 힘을 빌려 사회적 통념으로 고착화된 고정관념의 리스트도 주목을 요한다. 일례로 '여성의 이직률이 높은 이유는 직업의식이 낮기 때문'이란 통념에 넓은 공감대가 확보돼 있으나 실제 근무조건이 좋은 직장에서는 남녀의 이직률 차이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결손가족일수록 청소년 비행률이 높다'는 편견 또한 빈곤 환경이 가족의 결손율을 높이고 청소년 비행률도 높인다는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그릇된 가(假) 관계로 판명됐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정확하고 객관적인 데이터를 토대로 현실적합성이 높은 정책을 개발하고 이를 실행에 옮김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번 인구센서스에선 저출산 고령화의 강도 높은 도전에 직면한 한국 사회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중심으로 정책의 우선순위를 결정할 수 있도록 가감없이 현실을 담아내길 희망한다.
통계의 마술에 걸려 현실을 왜곡 인식하게 된다면 이는 천문학적 자원의 낭비를 가져올 것이요,통계가 교묘히 감추고 있는 부분이나 미처 포착하지 못한 부분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이 또한 우리의 권리를 포기하고 책임을 유기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함인희 <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