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약사·교사 등으로 활약…부와 권력 누렸지만 차별·학대 받기도
이런 문제들에 대해 지난날 역사가들이 제시한 설명은 이런 식이었다. 노예는 대개 전쟁포로 출신이었다. 로마가 팽창을 거듭하던 기원전 3~1세기 중 많은 포로들이 노예로 전락해 이탈리아 반도 내외에 팔려갔다. 이들이 논밭이나 공방,광산에서 노역을 하는 것은 로마 경제 운영에 필수적이었다. 착취와 억압에 시달리던 노예들은 '위험한 계급'이었다. 스파르타쿠스 반란(기원전 73~71)은 노예계급이 봉기해 기존 사회질서를 근본적으로 위협한 일대 사건이었다.
지금도 이런 설명들은 타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최근 역사가들은 노예제의 또 다른 면모들을 많이 밝혀냈다. 사슬에 묶여 강제노동을 한다는 식의 기존 이미지와는 다른 종류의 노예들도 많이 있었다. 예컨대 토스카나 지방의 아레조 공방에서 일하는 노예들은 아주 섬세한 도자기를 생산해 제국 각지에 보급했다.
로마에서는 거의 모든 부문에서 노예가 사용됐다. 가장 널리 쓰인 분야는 물론 농업이었다. 다만 순전히 노예들만 일하는 농장은 거의 볼 수 없었고,대개 자유민들과 섞여 함께 일했다. 이탈리아 반도의 중부와 남부에는 노예 노동의 비중이 비교적 컸던 반면,이집트 같은 곳에서는 그 비중이 훨씬 작았다. 노예들은 가내 하인으로도 많이 쓰였다. 대가문에서는 수십명,때로는 수백명의 노예가 존재했다. 서기 61년 노예에게 살해당한 고위 정치인인 페다니우스 세쿤두스는 당시 집에 400명의 노예를 둔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적으로 노예가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이처럼 농업과 가사가 노예 노동의 대종을 차지하지만,로마 노예제의 큰 특징은 직능 분화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크게 진척됐다는 것이다. 주인 대신 배를 관리하는 노예 선장 밑에서 자유민들이 노를 젓는 일도 가능했다. 심지어 황실 노예는 오늘날 장관 혹은 청와대 비서에 해당하는 직위의 일을 했다. 그들 중 일부는 지방 정부의 행정관들과 서신 교환을 담당했고,일부는 시민들의 탄원을 받아 검토하는 일을 했다. 전문적 능력을 가진 노예들은 통역(라틴어-그리스어)이나 회계 업무를 맡기도 했다. 이런 사람 중 일부는 해방된 후 부와 권력을 누려서 다른 공직자들의 질시를 받곤 했다.
지식인 노예들도 있었다. 학교 교사나 의사,약사 중에 노예 혹은 해방 노예들이 많았다. 로마 시민들은 자질이 의심스러운 외국 출신 의사들을 불신하고,대신 실력 있는 노예 의사들을 더 신뢰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어의로 유명했던 안토니우스 무사 역시 노예 출신이었다.
역사가들이 많이 주목하는 현상은 관리인(manager) 역할을 하는 노예의 존재다. 주인 대신 공방이나 가게,선박을 운영하는 노예는 비록 수는 적지만 경제적으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때로 자기 직장에서 따로 살며 '첩'(concubine · 이들은 정식으로 결혼할 수 없었다)을 두고 아이를 키우며 사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은 사업 이윤을 주인과 나누어 가졌으며,거상(巨商)으로 성장한 사람은 이렇게 모은 돈으로 노예 신분에서 해방되기도 했다.
관리인 노예는 크게 세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주인의 명령을 직접 받는 지배인 타입으로 주인의 지시에 따라 돈을 지불하는 출납원이나 금고를 관리하는 회계원 역할을 했다. 이들은 주인의 사업과 함께 자기 사업을 병행해 돈을 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일을 자기 계정으로 하는 식이다.
둘째는 가게나 공방을 주인 대신 관리하는 대리인 타입이다. 이들은 주인의 위임을 받아 경영하는데,위임 사항을 가게 정면에 붙여서 고객들이 볼 수 있도록 해야 했다. 위임의 범위를 넘는 일을 했다가 잘못되면 고객이 돈을 떼일 우려도 없지 않았다.
셋째는 일종의 위탁 경영인 타입이다. 주인이 일정한 자본을 노예에게 맡겨 사업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법적으로 따지면 노예는 여전히 다른 사람의 '소유물'이므로 자본을 소유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들에게 위임된 자본의 특수성을 인정받았다. 다만 이들이 파산했거나 부채를 졌을 때 주인은 자신이 위임한 자본 금액 한도 내에서만 책임지면 됐다. 노예 경영인이 실제로는 상당한 자율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은 당시의 사법 문건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주인들은 노예 경영인이 운영하는 사업의 구체적 사항들을 잘 모르고 있었는데,이는 노예가 거의 전적으로 책임지고 사업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관리인 노예는 오늘날 회사에서 일하는 우리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도 받는다. 정말 그럴까? 지난날의 노예들에 대해 너무 부정적으로 그리는 것도 문제지만 반대로 너무 긍정적으로 그리는 것도 문제다. 관리인 노예들이 상대적으로 사정이 좋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불평등과 억압 상태에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시민들과 달리 노예들에게는 채찍질 같은 체형이 가해졌으며,사법 조사를 받을 때면 고문을 견뎌야 했다. 또 남녀 노예 모두 주인으로부터 성적 학대를 피할 수 없었다.
로마의 노예는 전체 인구 중에서는 소수였다. 로마가 노예제 사회라는 것은 맞지만,그것은 쇠사슬에 묶여 농장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리는 노예가 사회 전체를 구조적으로 지탱해준다는 의미가 아니라,사회 각 분야마다 다양한 노예들이 경제,사회,법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는 의미이다.
주경철 <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