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주의자들과 진보주의자들이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각기 다른 결론에 도달하고 언제나 상대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근원적인 이유는 뭘까.

《도덕,정치를 말하다》는 이데올로기의 차이가 결국 세계를 바라보는 도덕체계의 차이,도덕적 분열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하는 책이다. 한 개인이 무의식적으로 정교하게 쌓아놓은 개념적 구조와 상식의 논리 자체가 다르다는 것.쉽게 말하자면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이고 올바른 행동은 무엇인지,이상적인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출발점이 다르다는 얘기다.

사람들의 정치적 사고를 읽어내는 데 인지언어학(인지과학)을 적용해 온 저자는 1990년대 중반,미국의 중간 선거 유세과정을 지켜보며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의 정치적 담론들이 상당 부분 판이한 도덕 시스템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보수와 진보 진영의 정책은 결국 도덕성과 이상적인 가족의 개념에 기반한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국가는 곧 가정'이라고 판단할 때 보수주의자는 '엄한 아버지 모델'을 추구하는 반면 진보주의자는 '자애로운 부모 모델'을 따른다.

보수는 규율과 강인함,절제를 높이 평가하는 데 비해 진보는 필요와 도움을 강조한다. 보수주의자들이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비판하는 이유는 공공의 도움에 의존함으로써 약하고 의지력이 부족한 사람들을 양산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보수파들이 누진세를 경제적인 징벌로 인식하는 데 비해 진보 진영은 세금 감면을 정작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혜택을 주지 못하도록 만드는 비도덕적 행위로 판단한다.

이 책은 정부의 역할,사회복지 프로그램,세금,교육,환경,에너지,총기 규제,낙태,사형제도 등 사회 모든 문제를 망라하면서 그 배후에 놓여있는 심오한 근본적 괴리를 다양한 사례와 함께 분석한다.

흥미로운 것은 모든 시민들이 한 가지 모델만 고집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세금감면과 낙태를 반대하는 동시에 환경보호론자일 수도 있다. 또 보수와 진보라는 이분법적 구분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진보의 편에 다소 무게중심을 둔 저자는 "보수주의자들은 미국 정치사에서 대체로 성공을 차지했고 그들을 이해할 수록 더 두려워진다"고 고백한다. 또한 부의 편중과 불균형이 진정한 사회 번영을 위협할 수 있다며 진보의 선전을 독려한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