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사망 수개월전 재산 2억여원을 아들 B씨 명의의 계좌에 입금했다. A씨가사망한 후 세무서는 B씨에게“아버지로부터 사전 증여를 받았다”며 증여세 380여만원을 부과했다. B씨는 “아버지가 증여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실소유자인차명계좌였다”며 조세심판원에 불복심판을 청구했다. 조세심판원은 최근 “B씨가 예금을 개설한 곳에 주소지를 두고 있지 않아 차명계좌로 봐야 한다”며 과세처분이 부당하다고 결정했다.

검찰의 태광그룹,한화그룹 수사 과정에서 차명계좌문제가 불거지면서 관련법적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금융실명제가 실시되고 있지만 남의 실명으로 차명계좌를 개설하는데 제한이 거의 없는데다 계좌에 있는 돈에 대해 상속 증여세를 부과할 방법도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차명계좌를 관리하던 명의 등의 처분을 받으면 차명계좌 사실을‘떳떳이’드러내며 소송으로 빠져나가려 한다. 심지어 형사피의자가 범죄수익을 넣은 것으로 의심받는 예금을 가압류당했을 때 차명계좌를 주장하며 소송을 내기도 한다.

원종훈 국민은행 세무사는 “금융실명제법에는 비실명 금융자산이 적발될 경우 해당 금융자산의 50%를 과징금으로 물리는 등 제재가 있긴 하지만 서로 합의하에 만든 차명계좌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법원 판례”라고 설명했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서는 명의신탁재산을 증여한 것으로 간주하고 증여세를 부과하는 45조의 2조항이 있지만 등기를 요하는 선박이나 주식,사채 등에만 적용되고 예금이나 적금, 펀드는 해당되지 않는다.

김성식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20일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차명계좌에 증여세를 부과하도록 의제화해야 한다”고주장하기도 했다. 윤증현 재정부 장관도 이에 대해 “실명제법 보완 등 관계부처간 협의를 통해 진전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2004년에는 의원 발의로 차명계좌에 대해 형사 처벌토록 한 금융실명법 개정안이 상정됐으나 폐기된 적이 있다.

임도원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