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매 분기 초 기금운용 기여도를 따져 증권회사와 자산운용회사의 등급을 매긴다. 300조원을 굴리는 국내 최대 '큰손'인 국민연금의 평가는 증권 · 운용사들의 영업실적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이 평가등급에 따라 증권사는 중개수수료 수입을 챙길 수 있는 국민연금 주식 주문량이 정해지고,운용사는 국민연금이 운용을 위탁하는 자금 규모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4분기(10~12월)가 시작된 지 보름여가 지났는데 증권 · 운용사의 이번 분기 등급이 어떻게 매겨졌는지 오리무중이다. 업계에 철저히 입단속을 시켰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각 업체의 등급만 알려주고 이를 외부로 유출할 경우 향후 평가대상에서 제외하겠다며 보안을 요구했다"고 귀띔했다. 전 분기만 해도 증권사들은 같은 등급을 받은 회사 정도는 알 수 있었지만,이번엔 개별 등급만 알려주고 '석차'는 비밀에 부친 것이다.

운용사의 평가등급 감추기는 더 심하다. 지난주 국정감사에서 이애주 의원(한나라당)이 국민연금의 '전관예우'를 지적하며 국민연금 측에 운용사 평가등급 자료 제출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국민연금 측은 운용사가 계약할 때 비공개 원칙을 명시했기 때문이란 이유를 내세웠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우수한 등급을 받은 곳은 등급 공개를 반기겠지만,최저 등급을 받은 곳은 영업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어 공개하지 않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같은 국민연금의 등급 공개 거부에 대한 업계 시선은 곱지 않다. 국민연금이 평가등급에 대해 '철통 보안'을 요구한 것이 지난 7월 본지가 '국민연금 전관예우' 의혹을 제기한 것과 무관치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당시 국민연금 출신 인사들을 임원으로 영입한 일부 증권사들이 뚜렷한 이유없이 평가등급이 계속 높아져 '옛 식구 밀어주기'라는 논란이 불거졌었다.

평가등급이 공개될 경우 등급이 낮은 증권 · 운용사들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국민연금 측 해명이 나름의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평가 공정성을 의심받는 상황에서 등급 공개를 거부하는 것은 전관예우를 감추기 위한 방편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다.

서정환 증권부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