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아이들은 열다섯이면 총 들고 마약하다 석 달 뒤 죽고 말아요".영화 '기적의 오케스트라-엘 시스테마'에 나오는 1975년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빈민가의 실상이다. 경제학자 겸 오르가니스트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오는 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마약과 폭력에 찌든 11명에게 총 대신 악기를 쥐어준다. '엘 시스테마(El-Sistema,베네수엘라 국립 유 · 청소년 오케스트라 육성재단)'의 시작이다. 창고와 차고를 전전했지만 음악에 눈뜬 아이들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꿈꾸는 법을 배우고 희망을 품게 된 건 물론 소속감과 협동심 책임 배려를 알게 된 것.

음악엔 이렇게 놀라운 힘이 있다. 누추한 삶에 빛을 주고 절망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용기를 심는다. 엘 시스테마의 대표 격인 '시몬 볼리바르 오케스트라' 출신으로 미국 LA 필하모닉 음악감독이 된 구스타보 두다멜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배운 건 음악을 통한 성공의 길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였다. "

교육과학기술부가 한국판 '엘 시스테마'를 추진한다는 소식이다. 소외 지역과 학교 폭력이 많은 곳을 중심으로 2011년과 2012년에 각 50개교씩 총 100개 학교를 선정해 1억원씩 지원,악기를 구입하고 연습실을 만들어 오케스트라를 창단하도록 독려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운영과 지속성이다. 악기를 주고 연습실을 마련해줘도 교장의 관심과 좋은 교사,정부나 지자체의 꾸준한 지원이 없으면 결코 제대로 꾸려질 수 없다. 엘 시스테마의 경우 지도교사만 1만5000명에 이르고,6주 동안 하루 4시간씩 연습해야 참가 자격을 준다고 돼 있다.

250개가 넘는다는 유 · 청소년 오케스트라와 세계적인 연주자 및 지휘자가 거저 탄생된 게 아니라는 얘기다. 가르치는 일은 뭐든 힘들거니와 음악은 더하다. 베네수엘라처럼 계속 활동가능한 단계별 오케스트라가 있는 상황도 아닌 만큼 아이들에게 목표를 갖고 열심히 연습하도록 이끌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의욕만으로 되는 일은 없다. 오케스트라 창단은 시간과 돈, 교사의 열정, 학생의 노력, 무대와 청중이 모두 필요한 일이다. 시작만 해놓고 이어가지 못하면 아까운 국고만 낭비하게 될 게 틀림없다. 외국사례가 근사해 보인다고 무작정 도입할 게 아니라 구체적 실천 방안부터 세우는 게 순서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