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형이 디자인 경쟁력"…이건희 회장 '금형 철학' 7년 만에 결실
"우수한 금형기술은 제품의 경쟁력,나아가 사업의 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 역량입니다. "

11일 광주광역시 첨단산업단지에 들어선 삼성전자 정밀금형개발센터의 준공식장.기념사를 읽어내려가는 최지성 사장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떨림이 느껴졌다. 삼성전자는 사양산업,저부가가치산업으로 홀대받던 금형산업에 미래 전자산업의 경쟁력이 걸려 있다고 판단, 7년간 투자를 해왔다. 이 개발센터는 앞으로 TV 냉장고 프린터 등 삼성전자 제품의 디자인 경쟁력을 좌우할 각종 금형기술을 개발하게 된다.

◆금형기술 좋아야 좋은 물건 나온다

2003년 8월12일 삼성전자 수원사업장.글로벌 전자기업의 제품을 한곳에서 볼 수 있는 선진제품 비교전시회가 열렸다. 이 행사를 둘러본 이건희 삼성 회장은 의외의 지시를 내렸다. "금형기술이 좋아야 좋은 물건이 나온다. 금형 관련 협력업체에서 특급,A급 기계를 쓰고 있는지 챙겨봐라." 제품의 질로 경쟁하는 시대를 지나 디자인이 향후 기업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는 얘기였다.

이 회장은 1996년부터 디자인 경쟁력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한계가 있었다. 디자인이 좋은 제품을 뽑아내려면 틀이 되는 금형과 사출 기술이 절대적이었으나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한국의 금형기술은 후진적 수준을 면치 못했다. 삼성전자도 겨우 일본,유럽에서 비싼 금형 기술을 사다 쓰면서 제품 경쟁력을 유지하는 정도였다. 이 회장은 이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선진 금형의 국산화를 강도 높게 주문했다.

삼성전자 경영진은 발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2004년 5월엔 금형 일류화추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위원장은 디지털미디어 총괄 겸 디자인센터 사장인 최지성 사장이 맡았다. 위원회 추진팀장은 윤부근 현 삼성전자 TV부문 사장(당시 개발팀장)이 맡았다. 추진위는 국내 대학에 교육생을 파견해 금형인력을 양성하고,협력업체들이 살 수 없는 값비싼 금형 기계를 구매해 임대해주는 등의 사업을 전개했다.

그리고 2006년 1월.금형일류화 추진팀장이자 삼성전자 TV사업 부문 개발팀장이었던 윤부근 전무는 결단을 내렸다. 세계 1위의 TV업체로 등극하기 위한 마지막 고개인 디자인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새로운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TV 각도에 따라 색깔이 달라보이는 ToC(touch of color)를 구현하기 위한 이중사출 공법 개발에 1000억원이 넘는 돈을 투자하기로 했다.

윤 사장은 "당시 TV사업부가 1년에 벌어들이는 돈이 4000억원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굉장한 결단이었다"고 회고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국내 11개 협력사가 참여했다. 2007년 11월 마침내 공법개발을 마치고 '크리스탈 로즈'라는 제품을 완성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중사출은 금형과 사출 경쟁력에서 선진국들의 수준을 뛰어넘는 공법으로 평가받았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삼성전자는 디자인면에서도 명실상부한 세계 1위 TV업체로 부상했다.

◆광주를 한국 금형산업의 메카로

이날 문을 연 정밀금형개발센터는 2004년부터 진행된 금형일류화추진위원회 활동의 결산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1400여억원이 투자된 공장은 한눈에도 축구장 5개(5929평 · 1만9590㎡)는 족히 넘어보였다. 2층 구조로 돼 있는 이곳에 들어선 사출기 2대와 금형가공장비 13대가 쉴 새 없이 금형을 찍어내고 있었다. 드럼세탁기의 뼈대 역할을 하는 튜브가 만들어져 나왔다. 각 생산장비 앞엔 모니터가 설치돼 선명한 영상으로 작업과정을 모니터링하도록 돼 있었다.

삼성전자 가전사업부 이상훈 상무는 "금형은 이곳에서 생산된 직후 검사를 거쳐 인근 협력사로 옮겨져 대량 생산에 사용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정밀금형센터를 주축으로 광주를 '금형 클러스터'로 만들겠다는 구상도 하고 있다.

광주=김현예/김용준 기자 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