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달 말 '대 · 중소기업 동반성장 추진대책'을 발표했다. 동반성장을 위해 중소기업 고유 업종을 지정해 대기업들의 진입을 제한하고,중소기업협동조합에 납품단가조정권을 부여하며 대기업으로 하여금 납품단가 인하 시 그 정당성을 입증하도록 했다.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경쟁력 확보를 위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대책이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에 적합한 업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시장은 일정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한다. 수요가 변하고 기술이 변한다. 이런 변화로 중소기업이 해오던 업종을 대기업이 할 수도 있고,대기업이 해오던 일을 중소기업이 할 수 있다. 또 중소기업이 할 수 있는 새로운 업종도 생긴다. 그 과정에서 이익을 보는 사람은 소비자들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포함한 기업들 간 경쟁으로 소비자들이 보다 값싸고 품질 좋은 제품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업종에 대한 진입 결정은 정부나 지식인과 같은 제3자보다는 시장에서 생존경쟁에 직면한 기업이 가장 잘 안다. 잘 알지 못하는 정부가 나서 중소기업에 적합한 업종을 지정해 대기업들이 진입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경쟁을 막아 값싸고 품질 좋은 제품을 향유하지 못하게 해 소비자의 후생을 감소시킨다.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납품단가조정권을 부여하는 것과 대기업으로 하여금 납품단가 인하에 대한 정당성을 입증하도록 한 것은 납품단가를 후려치는 것을 막기 위함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업의 궁극적인 목표는 소비자에게 질 좋은 제품을 안정적으로 판매함으로써 오랫동안 생존하는 데 있다. 질 좋은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질 좋은 부품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다. 따라서 대기업은 단기적인 이윤을 얻기 위해 납품단가를 후려치기보다는 좋은 협력업체와 장기적인 동반성장관계를 형성하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납품단가조정권 부여와 납품단가 인하의 정당성 입증은 가격에 의한 자발적 거래를 막아 오히려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동반성장에 방해가 될 수 있다. 부품의 가치는 부품에 들어가는 재료의 비용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부품이 사용돼 생산되는 최종재화의 가격에 의해 결정된다.

아무리 원자재 가격이 올랐다고 하더라도 최종재화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지 않으면 부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지 않아 부품의 가격 역시 오르지 않는 것이다. 납품단가조정권을 이용한 가격책정과 납품단가 인하의 정당성 입증은 이러한 가격 결정 메커니즘을 무시하는 것이다. 가격에 의한 자발적 거래를 막으면 시장 참여자들,즉 소비자와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에 손해가 간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경험이다.

한편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납품단가조정권을 부여한 것은 정부가 카르텔을 만들어준 것이다. 시장상황이 변하면 카르텔은 지속되지 못하고 와해되는 속성을 갖는다. 수요가 변하거나,어떤 중소기업이 기술개발로 인해 조합에서 정한 납품단가보다 낮은 가격에 납품하는 것이 이익이 된다고 하면 그 중소기업은 낮은 가격으로 거래하려고 하는 인센티브가 생긴다. 그렇게 되면 조합원들 간에 갈등이 생기고,납품단가조정제도의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올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 제도를 계속 고수한다면 중소기업들은 기술개발과 품질향상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할 것이다.

이번 대책은 자발적 거래를 제한하고 기업 간 경쟁을 억제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향상되기보다는 오히려 약화될 것이고,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이 방해받을 것이다. 동반성장은 자발적 거래와 경쟁에 의해 이뤄지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

안재욱 < 경희대 대학원장·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