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만을 앞두고 있는 임신부들의 관심은 크게 2가지다.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얼마나 아플까?” 전자의 의문에 대해서는 임신 기간 내내 산전검사를 하기 때문에 별다른 이상징후가 없다면 건강한 아기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출산의 고통’에 대해서는 경험한 바가 없는 초산 임신부라면 거의 공포 수준의 두려움을 갖고 있다. 여기에는 자라면서 봐온 영화나 드라마의 출산 장면이 한 몫을 해왔다.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통해 묘사되는 출산 장면은 임신부의 고통에 찬 신음과 울부짖음으로 표현되기 일쑤다. 그래서 그 장면을 보고 자란 수많은 여성들이 ‘출산의 진통’에 지레 겁을 먹는 것이다. 여기다 먼저 애를 낳아 본 선배들의 경험담이 부채질을 한다. 뼈가 늘어나는 고통, 배가 끊어질듯한 고통… 여기에다 난산으로 인한 고생담을 곁들이면 ‘출산’은 세상에서 둘도 없는 고통스런 경험이 된다. # 무통분만, 태아 밀어내는 힘은 살리고 통증은 말끔하게 줄여주고 실제로, 예술작품을 창작하는 과정을 ‘산고의 고통’에 비유하듯이 출산 진통은 대단히 큰 것이다. 대개 질환으로 인한 신체 고통 중에서도 산통은 고통 지수가 가장 높은 상위에 속한다. 출산을 경험한 여성들의 표현에 의하면 창자가 끊어질 듯이 아프고, 평소 경험하는 강도 높은 생리통의 수십배, 수백배에 이른다는 표현을 한다. 그래서일까, 진통을 획기적으로 경감시켜주는 ‘무통분만’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무통분만이란 출산 시 진통을 할 때 국소마취제를 등뒤의 척추부위, 정확히 말하여 경막외 공간에 주입하여 통증을 줄여주는 분만을 말한다. 주로 진통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자궁구가 3-4cm 정도 열릴 무렵 시술한다. 산모의 운동신경은 마비시키지 않고 감각신경만을 차단하기 때문에 산모의 의식은 또렷해서 태아를 밀어내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으며 통증만을 제거해주게 된다. 즉, 통증이 줄어드는 것 외에는 자연분만과 똑같다. 주로 아기를 처음 낳는 초산부들이 무통분만을 많이 선택한다. 그만큼 경험해보지 않은 ‘진통’에 커다란 공포감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통분만은 자연분만이 가능한 임신부라면 누구에게나 가능하지만 디스크나 교통사고로 허리 손상을 입었거나 척추에 이상이 있는 경우, 혈액응고에 지장이 있는 임신부는 금물이다. 마취제에 과민반응이 있거나 신경계에 이상이 있는 경우도 무통분만을 하지 못한다. 무통 분만을 한다고 해서 아기가 나오는 마지막 순간까지 통증이 완전히 차단되는 것은 아니다. 아기의 머리가 무사히 나올 때까지 의사의 지시에 따라 적절하게 힘을 줘야 하고 산모 스스로가 힘을 줘야 하는 시점을 느껴야 하기 때문에 그 때는 고통을 느끼게 된다. 무통분만은 보통 15~18시간 정도 진통이 진행되는 초산부들에게 심리적으로 안정을 주고 긴장감을 해소시켜 좀 더 편안하게 출산에 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장점이 있다. 태아에게 거의 영향이 없으며 시술 후의 부작용도 거의 없는 편이다. 가끔 요통을 호소하는 산모가 있지만 일시적 증상으로 자연치유가 된다. 다만 경막외강으로 마취제를 주사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경막에 구멍이 뚫리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두통이나 운동 마비 등이 나타날 수 있어 반드시 숙련된 마취통증의학과 의사가 상주하는 병원에서 시술 받아야 한다. 초산에 진통을 경험해본 임신부들은 두세 번 이어지는 출산 때에도 그대로 진통을 버텨내는 경우가 많다. 혹자는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그때의 통증을 다 잊어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글쎄 한번 겪어봤기에 또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는 경산부일수록 진행속도가 빨라 진통시간이 단축되기도 하고, 진통을 겪어내는 아기와 그 과정을 함께 견뎌내고 싶다는 엄마의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영국 예일대학의 연구에서는 자연분만에 의한 출산 시 엄마와 아이의 유대감이 더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흔히 아이를 낳으면 모성애가 저절로 생긴다고 하지만, 자연분만을 할 경우에 분비되는 호르몬, 옥시토신이 아이에 대한 감정적 정서적 반응을 촉발시켜 애착을 강화해준다. 이런 과정이 생략되는 제왕절개 수술에 비해 무통분만은 그나마 낫지만 약물의 개입 없이 자연분만이 이루어지는 것에 비한다면 그 효과는 낮을 것으로 본다. 출산 중에는 산모뿐 아니라 아기도 고통을 느끼는데, 이를 함께 견뎌내며 아기를 낳게 된다면 엄마가 아기에게 느끼는 정서적 밀착도와 애착, 감동은 클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무통분만은 출산에 대한 공포가 무척 큰 임신부에게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출산의 고통도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모험심 강한 산모라면 산고 끝에 찾아온 성취감은 더욱 클 것이다. 요즘은 인권분만이 확대되어 부드러운 음악과 어두운 조명 속에서 좌식분만, 수중분만, 그네분만, 공분만 등을 선택할 수 있고 앉거나 서고 웅크리는 등 다양한 자세를 취할 수 있어서 진통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어떤 분만법을 선택할 것인가, 선택은 출산을 앞둔 엄마에게 달려 있다. (글 / 인권분만연구회 회장 산부인과 전문의 김상현) 장익경기자 ikjang@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