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오른 3차 환율大戰] (4) 밀려드는 외국자본…기준금리 올려도 시장금리는 떨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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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신흥국의 딜레마
호주, 작년 이후 6차례 인상…국채 금리는 오히려 하락
한은도 올린다는 방침 섰지만 속도ㆍ폭 놓고 고민 거듭
금리 정책보다 통화 안정에 주력
호주, 작년 이후 6차례 인상…국채 금리는 오히려 하락
한은도 올린다는 방침 섰지만 속도ㆍ폭 놓고 고민 거듭
금리 정책보다 통화 안정에 주력
호주중앙은행(RBA)은 2009년 10월 정책금리를 연 3.0%에서 연 3.25%로 인상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 20개국(G20) 회원국 가운데 첫 금리 인상이었다. 치솟는 부동산 가격과 물가를 잡기 위한 조치였다.
RBA는 올해 5월까지 모두 6차례에 걸쳐 금리 인상을 단행해 정책금리를 연 4.50%로 높였다. 하지만 시장금리는 RBA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국채 금리는 되레 하락(국채가격은 상승)했다. 호주의 5년 만기 국채 금리는 2009년 9월 말 연 5.21%에서 지난달 말 연 4.85%,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같은 기간 연 5.43%에서 연 4.96%로 떨어졌다.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무역흑자에다 금리차와 환차익을 노린 외국자본이 밀려들어온 결과다.
◆외국자본 앞에서 속수무책
RBA의 금리정책은 단기결과만 놓고 보면 실패에 가깝다. 시장금리,특히 대출금리 상승을 유도해 부동산 매입 수요를 줄임으로써 과열을 잡기 위한 것이었지만 상황이 크게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호주의 부동산가격은 지난해 지역별로 최고 40%,전국적으로 10% 뛰었다. 올해 상반기에도 전국 기준으로 상승률이 10%에 육박한다. 그나마 올해 7월부터 부동산가격 상승세가 한풀 꺾였는데,이는 모기지 한도를 설정하는 등 대출 직접 규제에 따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환율대전의 진앙지인 미국에서도 과거에 나타났던 현상이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2004년 6월부터 2006년 3월까지 15차례에 걸쳐 금리를 인상해 정책금리를 연 1.0%에서 연 4.75%로 높였다. 하지만 이 기간에 1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은 연 4.62%에서 연 4.85%로 0.2%포인트 남짓 오른 데 그쳤다.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이 "수수께끼(conundrum) 같은 일"이라고 말해 '그린스펀의 수수께끼'라 불리는 현상이다. 이 같은 현상을 만들어낸 것 역시 중국 등 외국에서 밀려든 자본의 힘이었다.
◆한국은행의 고민
글로벌 경기 부진을 이겨내기 위해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이 돈을 쏟아부어 불어난 글로벌 유동성은 신흥국으로 밀려들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시장조사기관인 이머징포트폴리오펀드리서치(EPFR)자료를 인용해 올 들어 지난달까지 신흥시장 펀드에 신규 유입된 자금이 400억달러에 육박한다고 보도했다. 이는 종전 연간 최고기록의 무려 4배에 이르는 수치다. 이로 인해 신흥국의 채권값은 연일 치솟고 있다.
한국은 신흥국 중에서도 채권값이 가장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국가다. 미국이 지난 8월11일 FRB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어 시중에 달러 공급방침을 밝힌 이후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0.8%포인트 떨어져 이달 1일 연 4.0%를 기록했다. 사상 최저 금리다. 같은 기간 인도네시아(연 8.20%→연 7.55%),말레이시아(연 3.93%→연 3.62%),싱가포르(연 2.22%→연 1.91%),브라질(연 11.92%→연 11.81%) 등보다 낙폭이 크다.
한국은행은 정책금리(기준금리) 인상 방침을 밝히고 있지만 속도와 폭을 놓고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기준금리를 인상한다 하더라도 시장금리가 상승할 가능성이 높지 않은 편"이라며 통화정책 실효성 상실에 대한 우려를 털어놨다. 한은으로서는 그렇다고 기준금리 인상을 마냥 뒤로 미룰 수도 없는 형편이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3.6%로 한은의 목표치(3.0%)를 크게 웃돌았다. 올해 4분기와 내년에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를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는 게 한은의 판단이다. 서철수 대우증권 차장은 "이달 14일 금통위에서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에 대한 시장의 전망이 반반으로 엇갈릴 정도로 불확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흥국 중앙은행의 대응
경제회복 속도가 상대적으로 빠른 신흥국 중앙은행들은 미국과 중국의 위안화 절상 힘겨루기로 시작된 '3차 환율대전'이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물가 불안에 선제 대응하기 위한 금리 인상에 치중했다. 하지만 8월 이후엔 금리 인상보다는 통화가치 안정에 더 주력하는 모습이다.
말레이시아는 올 들어 7월까지 세 차례 정책금리를 인상했지만 이후 정책금리를 동결했다. 대신 외환시장에 밀려든 외화를 중앙은행이 직접 사들여 환율 급락을 막는 정책을 펴고 있다. 지난해 11월 정책금리를 1%포인트 인상한 베트남중앙은행도 추가 인상을 검토했으나 자국 통화인 '동'화의 강세로 타이밍을 다시 저울질하고 있다.
RBA는 지난 5월 정책금리 인상 이후 4개월 연속 동결했다. 브라질중앙은행도 7월 인상 이후 정책금리를 유지시켜 오고 있다. 브라질은 대신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지난달 브라질중앙은행이 시장에서 사들인 달러는 94억달러에 이른다.
한국의 외환당국은 외국자본 및 환율 움직임은 기본적으로 시장에 맡겨두되 과도한 쏠림은 막는다는 입장이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