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의 영유권을 둘러싼 중국과 일본 사이의 힘겨루기는 중국의 압박에 못이긴 일본이 사실상 백기를 들면서 일단락됐다. 이번 사건은 부상중인 중국의 패권 추구가 현실화되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21세기 동북아지역은 중국의 패권 추구와 함께 구한말 못지 않은 거친 격량 속으로 빠져들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이미 5조달러를 넘어 세계 2위 자리에 올랐다. 중국 공식 군사비 1000억달러(비공식 1500억~2000억달러)는 500억달러의 일본과 240억달러의 한국을 훨씬 앞서나가고 있다.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미국과 중국이 공생관계를 유지하면서 세계를 주무르는 '차이메리카(Chimerica) 시대'를 거쳐 중국의 패권 추구가 현실화되는 상황이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한반도가 속한 동북아지역에서 중국은 커진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영향력을 급속히 확대해가고 있다.

세계사를 되돌아볼 때 세계적 차원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패권국가의 교체는 두 번 일어났다. 첫 번째는 대영제국으로부터 미국으로 패권이 교체된 경우다. 두 나라는 이념과 가치와 공통의 국익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평화적 바통 터치가 가능했다. 이와 달리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 사이에 벌어진 두 번째 패권 대결은 생사를 건 투쟁이었고 소련의 몰락으로 막을 내렸다. 이처럼 이념이 서로 다른 이질적 패권 추구 국가들 사이의 평화적 패권 교체는 매우 어렵다.

만약 미국과 중국 사이에 패권 경쟁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세 번째가 될 것이다. 중국은 경제적으로 개혁과 개방정책을 추구하고 있지만 정치체제 면에서 미국과 동북아 지역 민주주의 국가들과는 아직 이념과 가치를 공유하고 있지 못하다. 이런 차이점 때문에 미국과 중국 사이의 세 번째 패권 경쟁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가늠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미 · 중 패권경쟁은 중 · 일 영토분쟁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고 한국에 커다란 전략적 딜레마를 안겨줄 것이라는 점이다.

앞으로 전개될 이런 불확실한 국제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방안은 현실주의적 노선을 견지하는 것이다. 과거 200년에 걸친 두 번의 패권 교체 과정은 주변 그 어떤 강대국보다도 미국과의 동맹관계가 유지됐을 때 우리 민족이 안정과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세계 경제의 엔진으로 등장하고 있는 중국과 경제적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한국의 국익에 부합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기존의 한 · 미 동맹관계를 재조정해 군사 안보 측면에서 급격하게 대중국경사정책(對中國傾斜政策)을 취하는 것은 현시점에서 우리의 국익에 부합되지 않는다. 따라서 한 · 미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고 그 바탕 위에서 중국의 부상과 패권 추구에 대비해 나가는 것이 국익에 부합된다.

중국은 한 · 미동맹을 '냉전의 잔재'로 보고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외교'를 취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 · 미동맹은 중국이 북한의 남침에 사전 동의해 6 · 25전쟁이 발발함으로써 그 결과 맺어진 것이다. 이 점에서 핵 개발에 나선 북한의 위협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한국에 한 · 미동맹을 폐기하거나 재조정하라는 중국의 요구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번 센카쿠 열도 사건은 우리 국익의 관점에서 장기적 · 전략적 비전을 갖고 중국의 부상에 나름대로의 대응책을 마련해 주변국들을 설득해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이명박 정부는 최근 발생한 외교부 내부 문제를 하루빨리 정리하고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가기 위한 외교전략을 마련해가야 할 것이다.

김영호 < 성신여대 교수·국제정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