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투자는 지나친 사치일까.

고급 포도주 투자시장이 호황이다. 와인중개업체인 '파인 플러스 래어 브로커스'에 따르면 고급 와인인 샤토 라피트 로쉴드(Chateau Lafite Rothschild) 2009년산 한 상자(750㎖짜리 12병)는 지난 6월 영국 시판가격이 1만파운드(약 1810만원)였으나 지난 19일 현재 1만3657파운드로 36%나 뛰어올랐다. 같은 기간 샤토 라투르(Latour) 2009년산 한 상자도 1만파운드에서 1만2000파운드로 20% 상승했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고급 와인 시장이 장기 호황을 타고 있다고 보도했다. 샤토 라피트 로쉴드 2000년산 수익률은 2004년 이후 618%에 달했다. 한 상자 가격이 2004년 2560파운드에서 1만8400파운드로 치솟았다. 샤토 페트뤼스(Petrus)를 2004년 12월에 산 투자자라면 255%의 수익률을 올렸다. 1만2000파운드에서 3만6627파운드로 상자당 2만4627파운드 수익이 났다.

세계 100대 와인 가격 추이를 지수화한 런던국제와인거래소의 '라이브-엑스 파인와인 100'은 2001년 설정된 이래 200% 이상 상승했다. 이 기간 경기 부침을 감안하면 상당한 강세장이다. 고급 와인 공급이 제한됐던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샤토 라피트 로쉴드는 한 해 약 48만병,샤토 라투르는 약 35만병만 생산된다. 다른 럭셔리 제품과 달리 포도밭이 한정돼 있어 수요가 늘어난다고 바로 공급을 늘릴 수가 없다. 와인은 고급을 찾을수록 물량이 달리게 된다.

더욱이 2008년부터 중국과 홍콩에서 와인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홍콩은 와인에 부과하던 수입관세와 주류세를 폐지해 버렸다. 유럽의 와인거래업체인 '베리 브러더스 앤드 러드'의 애덤 빌비 홍콩지점 판매 매니저는 "와인에 대한 관심이 홍콩에서 시작해 급속한 경제성장과 함께 부(富)를 일군 중국 본토인들로 확산된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투자에 나서더라도 몇 가지 종류의 고급 와인으로 포트폴리오를 짜라고 권한다. 프랑스 보르도의 메독 지역에서 생산되는 최고급 와인일수록 투자가치가 높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제품은 샤토 라피트 로쉴드,라투르,마고(Margaux),무통 로쉴드(Mouton Rothschild),오브리옹(Haut Brion)이다.

보르도 가론강 건너편 지역에서 나는 샤토 페트뤼스,르 팽(Le Pin),슈발 블랑(Cheval Blanc)과 오손느(Ausone)도 고급 리스트에 오른다. 보르도를 벗어난 지역산으로는 부르고뉴(Burgundy)의 도메인 들 라 로마네 콩티(Domaine de la Romanee-Conti)와 랄루 비즈 르로이(Lalou Bize Leroy)가 상당한 수익률이 난다고 WSJ는 전했다.

'파인 플러스 래어 와인'의 마크 베디니 최고경영자(CEO)는 "보르도산 와인은 1996,2000,2005,2009년산에 특히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르도산은 환금성이 좋아 투자자가 샀다가 팔고 싶을 때 내놔도 바로 거래된다는 장점이 있다. 그는 "샤토 마고,무통,라피트,라투르가 그런 제품에 속한다"면서 "샤토 페트뤼스는 투자가치가 뛰어나지만 유동성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고급 와인을 구입하거나 투자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보르도산 와인의 경우 오크통에서 숙성된 후 병에 담기 전 열리는 여름철 앙 프리뫼르(En Primeur) 캠페인 때 미리 직접 사두면 된다. 원하는 물량을 확보할 수 있고,원하는 초기 가격에 구입할 수 있으나 보틀링 후 와인 맛이 떨어지면 가격도 하락할 수 있다는 게 리스크다. 다른 하나는 와인펀드에 가입해 간접투자하는 것이다. 다만 가입 수수료(5%),연간 운용수수료(1.5~2.5%),해지수수료(최고 약 20%)를 부담해야 한다.

와인 투자시장이 촘촘한 규제를 받지 않고 모든 제품이 상승세를 타지 않는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사토 피작(Figeac) 2009년산과 샤토 디켐(d'Yquem) 2009년산은 가격이 제자리걸음이다. 2005년산 샤토 피작은 2006년 판매된 이후 가격이 2% 떨어졌다. 2009년 보르도 캠페인 때 마지막 차를 탄 투자자들도 가격이 하락해 쓴맛을 보고 있다. 영국에서는 "런던 시내 택시 운전사들이 와인투자를 얘기하기 시작하면 팔 때"라는 속설이 있다.

'베리 브러더스 앤드 러드'의 사이먼 스테이플즈 판매담당 이사는 그래도 낙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그는 "아시아에서 와인 열풍이 불고 있지만 아직 제대로 달아오르지 않았다"며 "고급 와인은 최소한 앞으로 10년간 더 가격이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