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이 유동성 위기로 2001년 8월 채권단 관리에 들어간 지 9년 만에 새 주인을 찾는다.

한국외환은행 등 9개 채권금융기관은 24일 현대건설 보유 지분 38.37% 가운데 34.88%에 대한 매각 공고를 낸다. 채권단이 선정한 매각주관사의 하나인 메릴린치증권이 10월1일까지 인수희망자들로부터 입찰참가의향서를 받아 적격자를 가려낸 뒤 이들을 대상으로 11월12일까지 본입찰을 실시한다.

채권단은 오는 12월 말까지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고 가급적 본계약 체결까지 마칠 방침이다. 채권단 지분을 인수하는 기업은 대주주로서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유재한 정책금융공사 사장은 "현대건설 매각은 인수자의 경영능력도 봐야 하지만 공정한 절차와 함께 가격도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현대 · 기아자동차그룹과 현대그룹 등이 인수 후보군으로 꼽히고 있다. 제3의 후보자가 등장할 가능성을 배제할수는 없지만,이들 외에 아직까지 직 · 간접적으로 인수 의지를 밝힌 기업은 없는 상태다.

현대그룹은 2006년부터 지속적으로 현대건설 인수의지를 밝혀왔다. 고(故)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고 정몽헌 회장이 등장하는 추석연휴 TV 광고 등을 통해 인수 정당성 알리기에 나섰다. 현대건설이 주력 계열사 현대상선 지분 8.3%를 갖고 있어 다른 기업에 팔릴 경우 경영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점도 현대건설 인수에 적극적인 이유로 꼽힌다. 현대그룹은 최근 신규 여신 중단과 만기도래 채권 회수 등 채권단 제재를 풀어 달라며 제기한 가처분 신청이 법원으로부터 받아들여져 현대건설 인수전에 본격 뛰어들 채비를 갖추게 됐다.

현대 · 기아차그룹은 아직 공식적인 인수전 참여를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금융계 등에서는 지난 5월부터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실무적인 인수작업을 사실상 마무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엔 현대건설 인수를 위한 법률자문사로 김&장을,재무자문사로 도이치증권과 맥쿼리증권을 각각 선정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금명간 공식적인 인수 의사 표명이 있을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당초 현대건설이 범(汎)현대가의 모태기업이라는 상징성에다 계열 건설회사인 엠코 등과의 합병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고려해 인수전 참여를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권에서는 현대차그룹이 4조원이 넘는 막대한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데다 현대중공업과 KCC 등 범현대가 그룹들의 물밑 지원을 받을 가능성이 큰 만큼 2파전 대결로 압축되면 인수전에서 한발 앞설 것으로 보고 있다.

채권단은 입찰 참가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입장이어서 의외의 변수가 생길 가능성도 없지 않다. 채권단 관계자는 "매각 주관사들이 유효 경쟁을 위해 국내 외에서 다른 참가자를 끌어들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며 "현대가 쪽이 아니더라도 유동성이 풍부한 기업이 투자한다면 현대건설은 독자 기업으로 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채권단은 현대건설 인수자의 구체적인 자격 요건에 대해서는 필요하다면 당국에 자문을 얻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