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하구가 비닐하우스로 가득했던 농경지에서 정돈된 자연으로 돌아갔다. 인간의 힘을 빌린 결과다. 서울은 1980년대 한강종합개발로 둔치에 연인원 5500만명이 심신을 단련하고 휴식할 공간이 생겼다.

반면 부산은 산에 둘러싸인 협소한 해안지역이어서 시민 휴식공간이 제한돼 있었다. 낙동강 삼각주는 특히나 농경지와 공장지대로 바뀌어 시민들이 하천변에 다가가기 어려웠고 경관 또한 자연의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드디어 4대강 살리기 사업을 통해 낙동강 하구도 선진국처럼 자연과 어우러진 곳으로 탈바꿈하게 됐다. 아름다운 해안과 함께 낙동강 하구의 친환경적 경관은 부산을 세계적 수준의 도시로 만들 것이다.

환경주의자들은 현대 물질문명을 풍요롭게 누리려면 자연을 파괴할 수밖에 없고 훼손된 자연은 인간을 죽음으로 내몰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렇다고 개발을 외면한 곳들이 사람이 살 만한 환경인지를 따져보면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아프리카나 북한처럼 미개발 지역은 오히려 자연이 피폐해지고 삶의 질은 최악으로 떨어졌다. 과학이 발달하지 못한 채 지금과 같은 폭발적인 인구 증가에 직면했다면 지구는 인류가 살 수 없는 황폐한 땅으로 전락했을 것이다. 선진국들이 자연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고 자연의 후견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눈여겨봐야 한다.

우리나라는 1960~80년대 경제성장 위주 정책을 펼치면서 환경이 많이 파괴됐다. 먹고 사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하천변 농사도 허용했다. 문제는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더라도 환경에 피해를 준다는 점이다. 친환경 퇴비는 축산분료나 음식물 쓰레기로 만든다. 홍수로 유기농 지역이 물에 잠기면 심각한 수질오염을 야기한다. 선진국들이 하천부지 안에서 유기농 경작조차 철저하게 금하고 있는 이유다. 우리나라 환경단체들도 2000년대 들어 하천부지 내에서 경작을 금지하도록 요구했다. 그러나 정치적 · 현실적 이유로 이런 조치는 차일피일 미뤄져왔다. 언젠가는 누군가 해야 할 일이었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좁은 국토라는 조건에서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적극 고민한 결과라 할 수 있다. 4대강 유역을 순수한 자연으로 되돌리기보다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환경을 만드는 선진국의 지혜를 빌린 것이다.

선진국의 하천들은 '땅을 정복하고 짐승들을 부리라'(창세기 1장 28절)는 성경 말씀을 인간 중심적으로 해석한 결과다. 선진국들은 강가에 댐을 만든 뒤 수력발전을 통해 용수를 공급하고 일자리도 만들면서 세계 경제를 주도하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의 폴 콜리어 교수는 기술과 훌륭한 정책으로 자연을 이용하면 사회가 번성할 수 있으나,이용만 하고 관리를 못하면 환경이 파괴된다고 주장했다. 자연을 그대로 놓아두면 빈곤에 빠진다고 강조했다.

자연주의는 가장 이상적인 가치이긴 하다. 그러나 70억명이 넘어선 지구 인구가 2050년 90억명이 된다면 더욱 자연을 방치할 수 없다. 미래에는 전 세계의 경작가능지 중 60~70%를 농지로 바꿔야 인류가 생존할 수 있다. 자연자원이 거의 없는 한반도에서 과거 조상들같이 척박한 자연만 물려준다면 후손들은 글로벌 경쟁에서 어려운 싸움을 해야 할 것이다. 유럽이 15세기부터 세계 강국이 됐고 지금도 잘 살고 있는 이유는 개척정신을 토대로 자연을 최대로 활용하고 개발하는 우수한 기술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제 '개발은 환경파괴'라는 환경주의자들의 주장에 움찔해서는 안 된다. 자연을 그대로 놓아두느냐,활용하느냐에 따라 우리 후손의 미래가 좌우된다. 자연은 그 자체의 순수성 때문에 중요한 것이 아니라 활용가치가 있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다. 후손들은 우리가 생산적인 가치로 전환된 자연을 물려주는 것을 고마워할 것이다.

박재광 < 美위스콘신대 교수·건설환경공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