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취한 사람들은 말한다. '나는 똑바로 걷고 있는데 땅이 멋대로 출렁인다. '취하지 않아도 누구나 간혹 겪는다. 앉았다 일어서거나 사우나에서 나오는 순간 눈앞이 아득해지면서 주위 사물 모두가 빙빙 도는 것처럼 느껴져 몸을 제대로 가누기 힘든 현기증이 그것이다.

보통 잠깐 그러다 마는 만큼 무심코 지나가지만 어지러운 시간이 길어지거나 횟수가 잦아지면 무섭다. 왜 이러나,무슨 병에 걸린 건가,이러다 발을 헛디뎌 넘어지거나 높은 데서 떨어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 빈혈이라고 생각,혼자 철분 보충제를 먹는 여성들도 많다.

그러나 빈혈이 현기증을 일으키는 경우는 적고 대부분 귀 탓이라고 한다. 평형기능을 담당하는 귀의 전정기관에 장애가 생기는 건데 속귀에 있는 작은돌(耳石)이 떨어져 나와 세반고리관으로 들어가는 게 주원인이란 설명이다. 또 전정기관 안을 채우고 있는 림프액의 압력이 높아져 발생하는 수도 있는데 이는 메니에르병으로 불린다. 귀 다음으로 문제가 되는 건 뇌 혈류 장애다. 뇌졸중 뇌출혈 뇌종양 혹은 교통사고로 뇌가 손상됐을 경우인데 머리가 붕 뜨는 듯한 느낌이 강하고 방치하면 중풍,공황장애로 발전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전정기관 장애는 말초성,뇌문제는 중추성으로 분류한다.

이 밖에도 약물 부작용,영양소 부족,감염,외상,지나친 태양광 노출 등 현기증의 원인은 허다하다. 3D 영화 '아바타'를 보던 중 어지럽고 토했다는 사람이 있거니와 실제 방송통신위원회의 지상파 3D방송 시청자 조사 결과에서도 일반인의 34%가 어지러웠던 것으로 나타났다.

어쨌거나 이유없이 어지럽다는 사람들이 많은 가운데 실제 속귀 이상에서 비롯된 말초성 어지럼증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귀의 날(9월9일,귀 모습이 숫자 9와 비슷하대서 대한이비인후과학회가 1961년 지정)을 앞두고 알아봤더니 2005~2009년 말초성 어지럼증으로 치료받은 사람이 연평균 11% 증가하면서 진료비 또한 매년 19%나 늘었다는 것이다.

말초성 어지럼증의 경우 뚜렷한 원인도 치료법도 없다는 마당이다. 예방수칙이래야 짠것과 카페인을 줄이고 무엇보다 스트레스를 없애야 한다는데 들리는 소식은 하나같이 열받게 하는 것들 뿐이니 어지럽지 않을 수 없다. 이래저래 살기 힘든 세상이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