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은 자랑거리가 많다. 깔끔한 산책로를 따라 패랭이꽃이 반겨주고,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몽글몽글 맺힌 땀을 식혀준다. 리모델링된 전망대와 정상의 공원은 시민의 쉼터로 자리 잡았다.

"남산이 보약입니다. " 지역구 주민들과 산을 오를 때마다 듣는 말처럼,서울 한가운데 있는 남산은 묵묵히 시민들의 건강을 챙기고 있다.

남산에는 다른 곳에서 찾기 어려운 명소 또한 있다. 오래된 문화재도,비싼 예술품도,웅장한 건축물도 아닌,수많은 사람들의 소망이 영글어 있는 '사랑의 자물쇠'가 그것이다. 2006년 어느 연인이 사랑의 문구를 적어 채운 것이 유래가 됐다고 한다. 그 후 연예인들이 자물쇠를 다는 모습이 방영되자 유행으로 번졌다.

남산의 명물이지만 보는 시선이 다 고운 것은 아니다. 자물쇠들이 전망을 가리고 있고,숲속에 던져진 열쇠들이 쓰레기가 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당국은 자물쇠 트리를 만들어 자물쇠를 옮기고 철망 대신 투명 아크릴을 설치했다. 공익을 내세우며 철거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 '유혹'을 뿌리치고 낭만의 공간을 지켜낸 것은 높이 평가하고 싶다. 이것은 낭만의 도시로 알려진 파리도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파리 예술의 다리(Pont des Arts)는 연인들이 사랑의 자물쇠를 채우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 5월 시 당국은 19세기 건축물인 다리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자물쇠들을 철거했다. 잠깐 난간이 깔끔해졌지만 곧 새로운 자물쇠들이 채워지기 시작했고 과거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한다. 전 세계 관광객들이 자물쇠를 들고 찾아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파리시가 낭만의 파괴자라는 비난을 받으면서 얻은 성과는 미약하다. 그렇게 문화재를 사랑한다는 파리 시민과 언론도 시 당국에 등을 돌렸으니 말이다. 파리시와 달리 서울시는 자물쇠를 남산의 명소로 보전할 생각이라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웅장한 건축물을 만들고 화려한 조명과 편의시설을 설치한다고 관광 명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스토리가 있어야 하고 그곳에 오는 사람들이 가슴에 품고 갈 수 있는 추억이 있어야 한다. 로마의 트레비 분수가 유명한 것은 단지 아름다운 조각들 때문만은 아니다. 그곳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만들어 줬기에 세계적인 명소가 된 것이다. 관광객들은 다시 로마로 돌아오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기만의 추억을 가져가기 위해 동전을 던진다. 로마에 트레비 분수가 있다면 서울에는 남산 전망대가 있다고 한다면 과장일까.

10년 후 연인들이 다시 찾아와 자신들의 자물쇠를 발견하는 모습,그들의 아이가 흐릿한 글자들을 또박또박 읽는 모습,그리고 한 가족이 손을 꼭 잡고 서로를 안아주는 모습….수만 개 중 하나에 불과한 녹슨 자물쇠가 연인의 성지를 한 가정의 성지로 만드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나경원 한나라당 국회의원 nakw@assembly.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