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 세무당국이 소득 탈루 및 탈세 혐의자에 대해 동시에 세무조사를 할 수 있게 된다. 국세청은 불법적 재산 반출이나 탈세 등 역외(域外)에서 발생하는 불법 행위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미국 국세청과 '한 · 미 동시 범칙조사 약정'을 체결했다고 8일 발표했다. 국세청이 외국의 과세당국과 동시 세무조사 약정을 체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 국세청이 다른 나라 국세청과 약정을 맺은 것은 5번째다.

이번 약정 체결로 양국에 경제적 거점을 가진 조세 범칙행위 혐의자 등 탈세 혐의자나 관련자,조장자 등에 대해 동시에 세무조사를 진행하면서 조사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됐다. 세무 조사는 양국 국세청이 동의해야 가능하며 한국과 미국이 각각 실시하게 된다.

박윤준 국세청 국제조사관리관은 "공동 조사는 아니지만 조사 중에 상호 진행상황과 결과를 확인할 수 있고 협의를 하게 된다"며 "이르면 연내에 첫 동시 세무조사를 실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미국의 사모펀드나 헤지펀드가 조세피난처 등 3국을 거쳐 한국에 투자하는 과정에서 탈세 혐의가 포착될 경우 미국 측에 동시 조사를 요청할 수 있다. 국내기업의 미국법인이 기업자금을 빼돌려 대주주에게 지급한 경우에는 이를 미국 과세당국에서 한국 측에 동시조사를 요구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사모펀드의 투자자 명단 공개 등 강도높은 조사까지도 가능하다는 게 국세청의 설명이다.

약정 체결로 외환은행 대주주인 론스타와 같은 미국계 사모펀드의 대규모 조세 회피에 대한 세무조사도 가능해진다. 론스타는 외환은행 지분 매각에 대한 세금을 회피할 목적으로 세운 LSF-KEB를 통해 2007년 보유하고 있던 외환은행 지분의 일부를 매각해 얻은 차익에 대한 원천징수분 세금(법인세) 1192억원을 국세청이 환급하지 않자 과세불복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론스타는 현재 남아 있는 외환은행 지분(51.02%)에 대해서도 일괄 매각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 매각이 끝나고 난 뒤 국세청의 조사 수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과 미국이 동시 범칙조사 약정을 체결한 것은 최근 경제위기로 사모펀드와 헤지펀드의 세금 회피 경향이 많아지면서 이들의 투자경로와 세금문제에 대한 폭넓은 파악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늘어난 재정 부담을 덜기 위해 세금 수입을 늘려야 한다는 필요성도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박 관리관은 "미국 측에서 이번 약정 운용을 담당하게 될 범칙조사부는 강력한 수사권과 폭넓은 금융정보 접근권을 갖고 있어 역외탈세 행위를 추적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도 역외탈세 대처 역량을 높이기 위한 국제공조 체제를 더욱 확대하고 관련 분야의 정보활동과 기획조사도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국세청은 역외 탈세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국제탈세정보센터(JITSIC)에 가입,역외탈세 전담센터를 설립했고 국제세원통합분석시스템을 구축했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