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유럽 증시에서 일반 주식거래보다 10배 이상 빠른 '극초단타매매(HFT)'가 시장을 심각하게 왜곡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 보편화하지 않았지만 외국인과 기관투자가를 중심으로 극초단타매매가 늘고 있어 주목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3일 극초단타 매매가 세계 증시를 지배하면서 위험한 시장 왜곡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가 각국 정책 당국자와 투자자들 사이에 나타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FT에 따르면 미국 증시에서 극초단타매매 비중(거래량 기준)은 2001년 21%에서 2009년 61%까지 치솟았고 올해도 56%를 기록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2005년 1%에 불과하던 비중이 올해 38%로 높아졌다.

극초단타매매가 문제가 되는 것은 과도하게 주식 회전율을 높여 주가 변동성을 키운다는 점이다. 지난 5월6일 미국 다우지수가 특별한 이유 없이 20분간 약 1000포인트 급락한 이른바 '순간 폭락(flash crash)' 사건의 배후에 극초단타매매가 있었다는 분석이다.

수십 번에서 수백 번으로 나눠 매매해 주가 변동에 대한 영향을 분산시킴에 따라 거래 당사자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다. 글로벌 자산운용사인 인베스코의 캐빈 크로닌 주식거래팀장은 "대부분의 극초단타매매에서 매수자와 매도자가 누구인지 아무도 모른다"며 "증시의 기본 기능인 공정한 가격 형성을 의심하게 하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또 극초단타매매는 초고속으로 매매가 이뤄지므로 다른 거래자들의 주문이 시장에 전달되기 전에 주문 내용을 미리 파악해 중간에 차익을 얻는 거래도 가능하다.

예컨대 일반 투자자가 매수주문을 1만원에 내면 극초단타매매는 먼저 9500원에 주식을 산 뒤 일반 투자자의 매수주문이 시장에 도달할 때 1만원에 되팔아 500원의 수익을 거둘 수 있는 것이다.

국내에선 삼성증권이 지난 2월 처음으로 외국인 기관 대상 극초단타매매 중개서비스를 시작했다. 삼성증권 관계자도 "회사의 외국인 주식 거래량의 10% 정도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작년에는 증권전산망을 운영하는 코스콤과 같은 건물(한국거래소 본관)에 입주한 일부 증권사들이 상대적으로 빠른 매매속도를 극초단타매매에 활용한다는 논란이 제기돼 거래소가 전산시스템 속도를 다른 증권사와 똑같이 조정하기도 했다.

주식워런트증권(ELW) 등 파생상품 거래에선 이미 극초단타매매가 성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극초단타매매로 폭증하는 거래물량을 감당하지 못해 거래소가 ELW 거래 서버를 따로 만들었을 정도로 파생상품 부문에선 일반화돼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홍콩에선 지난 1일부터 극초단타매매를 주제로 한 국제 콘퍼런스가 열리고 있다. 한국거래소와 뉴욕증권거래소 도쿄증권거래소를 비롯한 아시아·태평양 일대 200여개 거래소와 금융투자사가 참여, 아시아 시장의 극초단타매매 도입 문제를 논의 중이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 극초단타매매(HFT)

high frequency trading.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해 일반 주식거래보다 10배가량 빠른 속도로 매매해 수익을 올리는 거래 방식.일반 매수 주문 실행에는 0.3초가 걸리지만 극초단타매매는 0.03초면 된다. 다른 거래자가 낸 매수 호가보다 낮은 가격에 먼저 주식을 산 뒤 해당 호가에 되파는 거래가 가능하다. 거래 속도를 높이기 위해 고성능 컴퓨터를 쓰거나 거래소와 가까운 지역으로 옮기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