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월가의 헤지펀드인 '서드포인트 파트너스'에서 34억달러를 운용하고 있는 대니얼 뢰브 매니저.그는 2008년 대선 당시 버락 오바마 후보의 열렬한 지지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민주당원인 그는 민주당을 위해 수십만 달러에 이르는 후원금을 거둬줬다. 때로는 자신이 후원금을 냈다. 덕분에 백악관에 초청받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월가 금융인으로 손꼽혔다. 그런 뢰브 매니저가 최근 투자자들에게 오바마 정부를 맹비난하는 편지를 뿌렸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31일 '월가는 왜 오바마를 버리고 있나'는 제목으로 뢰브 매니저의 사례를 들면서 오바마 대통령이 월가에서 갈수록 외면당하는 현상을 소개했다.

뢰브는 편지를 통해 "미국의 건국이념은 징벌적이지 않은 세금 부과,헌법으로 보장된 소수인종 보호,불변의 자기 결정권"이라며 오바마 정부에 포문을 열었다. 그는 "하지만 워싱턴은 일부의 수중에서 돈과 권력을 빼내 다른 사람들의 손에 쥐어줘 민중들을 분열시키려는 것처럼 보인다"며 금융당국의 골드만삭스 제소를 예로 들었다. 이어 "우리 지도자들이 규제하고 재분배해야 번영한다는 자신들의 말을 믿어 달라지만 그렇게 해서는 경기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바마 대통령에게 등을 돌린 월가 금융인들은 뢰브뿐만이 아니다. 헤지펀드 'SAC 어드바이저스'를 세운 스티븐 코엔 역시 오바마의 지지자였으나 야당인 공화당의 후보와 만나 오는 11월 의회 중간선거 전략을 논의했다. 금융위기 이후 급부상한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CEO)도 오바마를 지지했지만 지금은 오바마 정부에 비판적이라고 측근들이 전했다.

NYT는 뢰브의 넋두리가 오바마 대통령의 월가 · 재계 친구들이 오바마 정부에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은행인,헤지펀드 매니저,증권거래인들의 지지 하락은 독특하다고 설명했다.

월가 금융인들은 당초 오바마 후보의 면면이 자신들의 자부심에 어필한다는 점에서 지지를 보냈다. 오바마가 뢰브 매니저와 같은 아이비리그 출신 엘리트이기 때문에 그에게 표를 던진 것은 현명한 선택이라고 여겼다. 오바마도 그들과 같은 동료애를 느낄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세금을 올리고 규제를 강화할 것으로는 예상했으나 자신들을 악당으로 취급할 것이라고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는 게 NYT의 분석이다.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은 월가를 향해 "살찐 고양이"라고 비난한 적이 있다. 월가 금융인들은 한마디로 동질성을 느낀 오바마에게서 배반당했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NYT는 뢰브 매니저와 같은 시각이 정당하든 그렇지 않든 월가 · 재계와 오바마 정부 간 신뢰가 깨진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신뢰가 없으면 기업들이 미국 내에 투자하지 않고 일자리도 만들어내지 않을 터인데 기업들의 불신은 현실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폴 오텔리니 인텔 CEO는 지난주 한 저녁 자리에서 "미국에서 혁신적인 물건은 창조되지 않을 것이며,일자리도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비꼬았다. 뢰브 매니저는 "운용 자금 중 상당 부분이 워싱턴의 정치 상황에 따라 베팅된다"고 토로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