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시상(詩想)의 중요한 재료다. 바람과 햇볕,포도나무와 풀잎을 따라가다보면 어느덧 평온과 싱그러운 내음이 그득 퍼진다.

《풀잎은 공중에 글을 쓴다》(호미 펴냄)는 자연을 모티브로 한 생태(生態) 시 선집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포도밭에서 탄생했다.

경기도 남양주시 장현리에서 포도 농사를 짓고 있는 류기봉 시인이 1998년부터 햇 포도를 수확하는 첫 주말에 열어왔던 '포도밭 시화(詩會)'에 꾸준히 참여한 시인들의 작품을 한데 모았다. 포도밭 시화는 류 시인의 표현대로 "하늘과 바람과 비와 구름이 한결같이 보살펴줘 알 굵고 실한 자연이 쓴 포도"와 "가슴과 영혼의 삶이 구슬구슬 깃든 시인의 육필이 무명천에 맺혀 포도나무에 걸리는,사람이 쓴 시"가 어우러지는 자리다. 포도에 대한 작품들도 유난히 많다.

'포도 한 송이에는// 식구들이 한데 모여 있는 것 같다// 가난한 시절 좁은 방에서 열 식구가 산 적이 있었다. // 가족이란 저렇게 모여 사는 것이다// 포도알들이 저렇게 살을 바싹 대고 있는 것처럼.'(조정권의 '포도 식구들'전문)

'남양주 장현리 포도밭/ 물과/ 바람과/ 태양,그리고/ 땀방울이 뭉쳐진 포도송이에서/ 시간이 덧칠 해 낸/ 보랏빛을 만난다// 한번 물들면 쉬이 지워지지 않을/ 저,보랏빛/ 송이송이 포도 알에서 뿜어내는/ 피톤치드의 보랏빛 소리를'(이경우의 '보랏빛 소리'전문)

시집의 제목은 정현종 시인의 작품 '풀잎은'에서 따왔다. '바람결 따라/ 풀잎은 공중에 글을 쓰지 않느냐./ 어디로 가겠는가. / 나는 손과 펜과 몸 전부로/ 항상 거기 귀의한다. / 거기서 나는 왔고/ 거기서 살았으며/ 그리로 갈 것이니….'

이 밖에도 이수익 · 이문재 · 이승하 · 박주택 · 박상순 · 고두현 · 문태준 · 이덕규 · 김행숙 · 차주일 · 심언주 · 이경우 · 김원경 등 총 16명의 시인과 소설가 김정산,김종대 헌법재판소 재판관,한승주 전 외무부장관이 자작시를 보탰다. 다음 달 4일 시작되는 장현리 포도밭 축제에서 시집 출간 기념행사가 열린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