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 중소기업 간 상생(相生)협력이 화두다. 대기업들이 잇달아 실천계획을 내놓는 등 속도도 빠르다. 겉으로 보면 대 · 중소기업의 협력 무드가 무르익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실제도 그런가. 대기업은 마지못해 하는 듯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있고 정부는 포퓰리즘적 정책이 아니냐는 지적에 당황하고 있다. 그 사이 국민들 사이엔 대기업의 실적이 중소기업을 착취한 결과라고 보는 식의 반기업 감정이 커져가고 있다.

상생을 이렇게 봐선 곤란하다. 한국경제신문이 국가브랜드위원회와 함께 '위대한 기업을 넘어 사랑받는 기업으로'의 저자인 라젠드라 시소디어 미국 벤틀리대학 교수를 초청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품격있는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누구는 돕고 누구는 도움을 받는 2분법을 넘어서야 한다. '사랑받는 기업'의 번역자이기도 한 권영설 한경가치혁신연구소 소장이 방한을 앞둔 시소디어 교수와 이메일 대담을 나눴다.

▼한국 정부가 최근 강조하고 있는 대 · 중소기업 상생 방안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일부 반발도 있겠지만 일종의 넛지(nudge · 간접적인 방법으로 선택을 유도하는 방법)정책으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기업들이 공급업체와의 협력으로 인한 긍정적인 혜택을 깨닫게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비즈니스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볼 때 '상생의 가치창조(win-win value creation)'를 이끄는 엔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처럼 고객과 주주만을 위해 가치창조를 한다고 제한하는 것은 결국 기업 스스로의 잠재력을 갉아먹는 것이지요. "

▼과거와는 다른 경영을 해야 한다는 얘기로 들립니다.

"자유시장경제 체제는 경쟁에 크게 의존해왔습니다. 그런데 비즈니스에서 보면 경쟁 못지않게 '협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도 대단히 많습니다. 실제로 협력을 통해 효율성과 효과성 측면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둔 사례가 많습니다. 문제는 회사가 극심한 경쟁 속에 있으면 이 협력이라는 새로운 생산요소를 활용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최근 조사를 보면 한 기업이 창조하는 가치의 80~85% 정도가 아웃소싱되고 있습니다. 기업들이 외부에서 사와서 20% 정도의 가치만 추가해 고객들에게 팔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업들이 수직통합을 지향했던 과거와는 달라진 아주 중요한 변화입니다. "

▼공급업체들을 잘 대하지 않으면 가치의 원천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이군요.

"실력있는 공급업체들이 거래하고 싶은 고객사를 선택할 수 있게 됐습니다. 공급업체를 상생의 관점에서 진정한 파트너로 잘 대하지 않는 기업이라면 이제 공급업체의 충성심을 얻을 수 없습니다. 공급업체를 마치 고객처럼 대우하는 것이 정말로 중요합니다. 고객에게 하듯이 공정하게 대하겠다고 약속해야 하고,공급업체들의 니즈를 이해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

▼실제 사례로 설명해주시죠.

"가장 대표적인 실패가 1990년대 '구매의 황제'로 불렸던 호세 이그나치오 로페즈가 구매담당 임원으로 있던 GM에서 벌어진 사례입니다. 당시 GM은 수익성이 추락하고 있었는데,로페즈가 어느해 모든 공급업체들에 납품가를 10% 낮추라고 일방 통보했습니다. 이 결정으로 GM은 그 해 수십억달러를 줄일 수 있게 됐고 전부 자기 회사의 수익이 되는 것이었지요. GM은 공급업체들에 만약 납품가 인하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더 이상 사업을 같이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

▼공급업체로는 '천하의 GM'이 요구하는 것을 거부하기가 어려웠을 텐데요.

"처음에는 별 수 없이 따라왔지요. 그런데 이런 상황이 수년째 계속되자 공급업체들이 하나둘 이탈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고품질 부품을 생산하는 업체들이 GM과의 거래를 끊고 더 나은 고객사를 찾아나섰습니다. 결국 GM은 자동차 업계에서 최고로 꼽히는 공급업체들 대부분을 잃었습니다. "

▼GM의 경쟁력 추락을 상생경영의 실패로 볼 수도 있군요. 성공 사례를 들자면요.

"최근 대규모 리콜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도요타 사례를 들 수 있습니다. 도요타는 1차 협력업체를 진정한 전략파트너로 대우합니다. 예를 들면,새차 디자인이 나오기도 전에 공급업체를 기획과정에 참여시킵니다. 도요타는 또 '설계 사양' 대신 '성능 사양'을 공급업체에 제공합니다. 공급업체들에 자세한 세부항목까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 아니라,성능사양을 만족시킬 최선의 방법을 공급업체들이 알아서 찾아낼 것이라고 믿는다는 얘기입니다. 도요타가 이렇게 대우하기 때문에 협력업체들은 더욱 혁신적이 되려고 노력하고 연구개발(R&D)에도 상당한 투자를 합니다. 이런 혜택이 결국 도요타와 고객들에게 돌아가는 것이지요. "

▼그렇게 보면 상생이라는 것이 원청업체와 협력업체만의 문제는 아니군요. 이해당사자 모두와 상생할 수 있어야 진정한 가치창조가 일어나는 것이지요.

"'사랑받는 기업'에서는 기업을 둘러싼 주요 이해관계자를 SPICE라는 약어로 부릅니다. 사회(Society) 파트너(Partners) 투자자(Investors) 고객(Customers) 그리고 직원(Employees)을 뜻합니다. '사랑받는 기업'은 기업을 둘러싼 이 모든 이해당사자들의 가치를 정렬하고 모두 만족시키는 회사입니다. '사랑받는 기업'으로 꼽힌 회사들은 10년이라는 비교 기간 동안 전체 시장 평균에 비해 9배나 높은 실적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

▼파트너를 보는 시각도 더 넓혀야 할 것 같습니다.

"파트너는 공급업체 등 후방 파트너와 도매업자,소매업자 등 전방파트너,그리고 합작회사 참여기업이나 우리 회사와 공동마케팅 관계를 갖고 있는 회사 등 수평파트너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어떤 파트너든지 간에 우리가 단순히 거래만 하는 관계가 될 것이냐 아니면 진정한 파트너십을 맺을 것이냐는 우리의 선택사항입니다. "

▼최근 '깨어있는 자본주의(Conscious Capitalism)' 운동을 벌이고 계신데,'사랑받는 기업'과는 어떤 관계가 있나요?

"사랑받는 기업 모델의 기반이 되는 이념이 바로 '깨어있는 자본주의'입니다. 기업을 한다는 것은 이해당사자들에게 갖가지 부와 복지를 만들어내는 고귀한 과업이어야 하고 또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이 기본철학입니다. 일부 기업들은 사회로부터 부를 얻어가면서도 사회에 엄청난 비용을 떠넘기고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회사들이 과연 세계를 위해 어떤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까? 그런 기업들은 사회 속에 있는 기생충과 같은 것이지요. 오늘날의 기업은 이제 '예전과 같은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해졌습니다. "

▼과거와 달라진 것이 너무 많은데,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를 뜻하는 것인지요.

"세 가지 정도를 들 수 있습니다. 첫번째로 전 세계적으로 중년 이상의 인구비율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 중년 이상의 인구가 갖고 있는 가치와 관심들,예를 들면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사회 환원에 대한 관심,물질주의에 대한 무관심,죽은 뒤 무엇을 남길까의 문제,그리고 영적인 주제에 대한 더 많은 관심 등이 많은 사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둘째로,사회에서 소위 '여성적인' 가치가 대단히 높아지고 있습니다. 몇 년 이내에 대부분의 전문직종이 여성에 의해 주도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세 번째 변화 동인은 당연히 인터넷입니다. 인터넷은 진정한 정보의 민주화를 이뤘고 수억명의 사람들이 관심사를 공유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기업을 둘러싼 환경이 이렇게 변한 만큼 예전처럼 오로지 '우리 회사'만을 생각하면서 기업활동을 할 수는 없게 된 것이지요.

▼'깨어있는 자본주의'가 시대적인 대세라는 주장인 것 같습니다.

"깨어있는 정신으로 산다는 것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고 우리가 그 속에 살고 있는 세상을 인식하도록 우리의 지각을 열어놓는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어떤 일에 반응할 때 가능하며 우리의 니즈와 가치,그리고 목표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결정을 내린다는 것을 뜻합니다. 깨어있는 기업은 개인에게 평화와 행복을 불러일으키고,사회적으로는 존경과 연대심을 가져다 주며,회사나 조직에는 그 사명을 완수토록 해주는 모델입니다. "

▼'깨어있는 자본주의' 시대에 기업과 정부의 관계는 어떻게 정립돼야 할까요?

"동양의 자유시장 속에도 이미 침투한 서구적 사고방식에 따르면 한 사회의 다양한 기관들 서로의 관계가 상당히 적대적으로 흐르는 경향이 적지 않습니다. 이런 갈등은 필요하지도 않고 실제로 있어서도 안됩니다. 결국 최대 다수의 사람들을 위한,최대다수의 복지를,그것도 미래에도 지속적일 수 있는 방식으로 창출하는 것이 같은 목적이니까요. 기업과 정부가 상생을 화두로,보다 더 원대한 목적을 갖고 기업과 정부가 함께 일하게 되면,규제를 해도 더 스마트하게 할 수 있고,국민들의 니즈도 더욱 더 잘 충족시켜줄 수 있고,비즈니스 기회도 더 많이 창출할 수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각국의 정부들은 기업들이 '깨어있는 자본주의'에 기반한 비즈니스 모델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

대담 : 권영설 한경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


◆ 시소디어 교수는

미국 벤틀리대 마케팅 교수.지난해 9월 '깨어있는 자본주의 연구소(Conscious Capitalism Institute)'를 창립해 회장을 맡고 있다. 컬럼비아대에서 마케팅과 경영 정책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1998년까지 조지메이슨 대에서 최고경영자 과정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2003년에는 영국 마케팅 전문 연구소가 선정한 '뛰어난 마케팅 사상가 50인'에 선정됐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등에 100편이 넘는 논문을 실었다. 저서로는 '위대한 기업을 넘어 사랑받는 기업으로''빅3법칙' 등이 있다. 2008년 한경이 주최하는 '글로벌 이노베이션 포럼'에 기조연사로 초청된 것을 포함,이번이 세 번째 방한이다.



◆ 내한 강연 일정

△한국생산성본부 CEO 특별강연(국가브랜드위원회 공동주최) 9월1일 오후 4시30분 생산성본부 2층

△전경련 주최 글로벌 상생포럼 9월2일 오전 7시30분 롯데호텔 사파이어룸

△연세대 경영연구소 '명사 초청 국가브랜드 토론회'(국가브랜드위 공동주최) 9월2일 오후 3시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본관

△IBK중소기업은행 최고경영자클럽 조찬회(국가브랜드위 공동주최) 9월3일 오전 8시30분 은행연합회 2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