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경기가 더 악화되면 국채와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증권을 추가 매입해 시중에 자금을 푸는 양적완화 정책을 재사용할 것을 시사했다.

버냉키 의장은 27일 와이오밍주 잭슨 홀에서 열린 주요국 중앙은행 총재 연례 컨퍼런스에서 기조 연설을 통해 "경기 회복세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약화되고 있다"고 재확인하고 "디플레이션 위험이 커지면 경기 진작을 위해 추가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그는 "장기 증권을 시중에서 매입해 장기 금리 인하를 유도하는 정책이 효과적이었다"고 평가한 뒤 "필요하다면 그런 증권을 추가로 매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국채나 모기지 증권을 대량 매입하는 양적완화 조치를 재개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은행 간 하루짜리 금리인 기준금리를 조정해온 기존 정책과는 다른 비전통적인 조치로 금융위기 이후 FRB는 이런 과감한 양적완화 대응책을 썼다.

버냉키 의장은 하지만 "일부 이코노미스트들이 주장해온 FRB의 중기 인플레 목표치를 상향 조정하는 것은 현 시점에서 적절치 않고 효과가 상대적으로 미약하다"면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도 지지를 얻지 못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버냉키 의장의 추가 부양책에 대한 발언은 지난 10일 FOMC의 발표 내용보다 한발 더 나아갔다는 평가다. FOMC에서는 만기로 확보되는 모기지 증권의 원리금을 동원,국채를 재매입하는 방식으로 시중 유동성을 흡수하지 않겠다고 밝힌 정도였다.

버냉키 의장이 이처럼 보다 공세적인 대응책을 제시한 것은 최근 발표된 경기지표들이 악화된 것을 반영한다. 이날 상무부는 지난 2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수정치가 1.6%(연율 기준)를 나타냈다고 발표했다. 이는 한 달 전 발표된 속보치 2.4%에 비해 대폭 내려간 것이다. 상무부는 무역적자가 확대되고,재고축적 효과가 줄어들면서 2분기 경제 성장이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부진했다고 설명했다.

주택과 고용,소비와 생산활동 등 각종 경제지표 둔화로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최근 미국에서는 '더블딥(경기 반짝 회복 후 재하강)'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제기돼 왔다. 지난달 신규주택 매매는 전달 대비 12% 급감한 27만6000채로 이 수치를 측정하기 시작한 1963년 이후 최소치를 기록했다. 이날 뉴욕증시에서 다우지수는 GDP 수정치 발표로 장중 한때 10,000 선을 밑돌기도 했지만 버냉키 의장의 추가 대응책 시사에 1.15% 상승하면서 10,000 선을 회복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이유정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