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상청도 종종 오보를 내지만 한국처럼 가혹한 비난을 받지는 않습니다. 예보관들의 고충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지난해 8월 국내 첫 외국인 고위 공무원(1급)으로 기용돼 화제를 모았던 켄 크로포드 기상청 기상선진화추진단장(68 · 사진)이 한국 공무원 생활 1년을 맞았다. 미국 오클라호마대 석좌교수 출신의 기상전문가인 그는 이명박 대통령(1억6000여만원)보다 두 배 이상 많은 26만달러(3억여원)의 특급 연봉을 받고 영입됐다.

크로포드 단장은 19일 첫돌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기상청이 오보 때문에 자주 도마에 오르는 데 대해 "슬프다(I feel sad)"고 표현했다. 그는 "예보정확도는 제가 오기 전부터 계속 상승해 지난해 92%까지 올라섰다"며 "비판받으면 안된다는 건 아니지만 기상청이 미래의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건전하게 비판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크로포드 단장은 1년간 경험한 한국 관료조직에 대해 "한국 기상청 공무원들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열심히 일하고 있고 기자재와 설비 같은 하드웨어도 미국보다 뛰어나지만 인사제도에 개선할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예보관은 전문성이 생명인데도 업무에 익숙해질만 하면 2년에 한 번씩 순환인사가 이뤄지는 데다 단순 잡무가 너무 많아 '과학자'로서의 정체성을 잊게 만든다고 했다.

한국에 과학인재 육성전략이 부족한 데 대해서도 쓴소리를 던졌다. 그는 "한국에서 일하는 미국 기상학자로서 매우 우려스러운 것은 한국에 재능있는 과학자가 많은 데도 이들이 대부분 미국으로 가서 일한다"며 "한국은 왜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지 분석하고 꼭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채용 직후 '기상선진화 10대 과제'를 추진한 크로포드 단장은 가장 큰 성과로 지난 4월 신설한 '기상레이더센터'를 꼽았다. 기상청,국토해양부,공군이 따로 운영하던 기상레이더를 범정부 차원에서 공동 활용하게 된 것이다. 그는 "납세자인 국민을 생각하더라도 기관마다 레이더시설을 각자 운영하고 중복 투자하는 비효율은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국가기후자료센터'를 내년 상반기에 설립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한반도 기후변화 상황을 기록하는 아카이브(보관소)를 구축해 정부와 민간에 정보를 모두 공개할 예정이다.

기상청 관계자들은 크로포드 단장이 '기상청의 히딩크' 역할을 했다며 우호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한 기상청 관계자는 "다른 부처와의 협력사업에 지지부진한 것들이 많았는데 크로포드 단장이 '외국인 전문가'라는 프리미엄을 활용하고 논리적으로 유관 부서를 설득해 급속도로 성사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크로포드 단장은 "기상청과의 계약은 2012년 5월 만료되지만 기상청이 원한다면 한국에서 계속 일하고 싶다"고 밝혔다. 미국에선 술을 입에도 대지 않았지만 한국에 온 뒤 회식문화 때문에 술실력이 늘어 소주 3잔까지 마실 수 있다고.미국에 있는 가족과 매일 인터넷전화 '스카이프'로 안부를 전한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