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위장전입이 문제다. 장관 경찰청장 국세청장에다 대법관 후보까지 걸려들었다. 그로 인한 고위 공직자의 도덕성 논란은 도대체 언제까지 되풀이되어야 하나. 국회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이래 지난 10년 동안 공직 인사 때마다 한번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 단골 메뉴가 위장전입이다. 과거 정권 때는 그 문제로 낙마한 후보자들도 적지 않았지만 이번 정권에서는 사과 한마디로 그냥 넘어갔다.

검증과정에서 걸러지지 않았을 리 없고 보면 알고도 눈을 감았다는 얘기다. 자녀교육을 위한 것은 봐주되,부동산과 관련된 재산증식 목적은 안 된다는 게 그 잣대라고 한다. 눈물겨운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제 자식 좋은 학교 보내려는 부모애에 대한 선의의 해석이지만 너무 자의적이고 관대함 또한 지나치다. 또 그런 허물에까지 갇히다 보면 마땅히 쓸 사람을 찾기 어렵다는 현실적 고충도 토로한다.

하지만 그것이 인사권자의 법에 대한 인식이라면 정말 '아니올씨다'다. 위장전입은 편법이나 도덕성의 차원을 넘어선 범죄행위이기 때문이다. 주민등록법 37조 벌칙 조항은 '주민등록 또는 주민등록증에 관하여 허위의 사실을 신고 또는 신청한 자'에 대해 3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위장전입을 엄격히 금지하면서 무거운 처벌 규정을 두고 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거주지를 우선 기준으로 삼는 주택 공급과 학교 배정에 있어 부당한 방법으로 이득을 취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해 위장전입은 다른 사람의 부동산 취득 기회를 빼앗아 경제적인 이득을 얻거나 다른 사람이 교육받을 권리를 가로채는 사기행위로서 엄벌의 대상이라는 것이 법 정신이다.

결국 법을 공정하게 집행해야 할 정부가 스스로 법을 무력화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는 꼴이다. 이러고서 어떻게 국민들에게 법질서를 말할 수 있을 것이며,나는 '바담풍'해야 하지만 너희는 '바람풍'이어야 한다고 외친들 누가 따라오겠는가. 오히려 그런 법이야 무시해도 좋다는 반(反)법치 정서,도덕 불감증을 조장하고 있음에 다름아니다.

일반 국민의 법 감정은 공평무사(公平無私)다. 누구든 법을 어기고 죄를 지었으면 예외없이 응분의 책임을 묻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 상식이고 원칙이다. 그런 보통 사람들이 해마다 500명 넘게 위장전입으로 벌금형 등의 처벌을 받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위장전입이 고위 공직자들에게 만연돼 있고,또 굳이 그런 흠결을 가진 사람들을 뽑아 쓰는 인사가 반복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도무지 그들에게 죄의식조차 없거나 법에 대한 무감각으로 볼 수밖에 없다.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 또한 법적 책임을 벗어나게 할 수는 있어도 도덕적 책임에까지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다.

공직자에게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은 공익을 지키기 위함이다. 공직자에게도 개인적 사익(私益)의 욕구는 항상 있다. 이미 법을 어기는 부당한 방법으로 다른 사람이 얻어야 할 혜택과 이익을 훔친 사람에게 공익을 추구해야 하는 자리를 맡기는 것이 어떻게 설득력을 가질 수가 있을까. 그의 직무 영역에서 공익의 가치와 사익의 욕구가 충돌할 경우 공익 우선의 판단을 담보할 수 있을까.

결국 정부 스스로 법을 지키지 못한다면 차라리 위장전입의 죄목과 처벌 조항을 없애는 것이 낫다는 비아냥이 나온다. 물론 그럴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그렇다면 방법은 한 가지,철저하게 법을 집행하고 책임을 묻는 것뿐이다. 특히 공직자에 대해서는 도덕적 책임을 더해 위장전입으로 얻었던 이득보다 더 큰 손해를 나중에까지 반드시 감수해야 한다는 확실한 경종(警鐘)이 울려져야 한다. 적어도 고위 공직자의 위장전입만이라도 뿌리뽑지 않고는 '공정한 사회'를 말할 수 없다.

추창근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