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기업들이 프랑스의 통조림 업체부터 남아프리카의 정보기술(IT) 업체까지 무서운 속도로 해외 기업을 사들이고 있다. 상대적으로 아시아의 경기 회복세가 빠른 데다 자국 통화가치 상승 등에 힘입어 공격적인 인수 · 합병(M&A)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시장정보 업체 딜로직의 조사를 인용해 올 상반기 아시아 기업들의 해외 M&A가 제안가 기준으로 1327억달러에 달했다고 17일 보도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배 이상 많다. 연말까지 가면 아시아 기업의 해외 M&A 규모가 사상 최고를 기록했던 2008년의 1970억달러를 쉽게 웃돌 것으로 보인다.

최근 홍콩 최대 갑부인 리카싱의 청쿵그룹이 주도한 컨소시엄은 프랑스전기가 보유한 영국 전역 전력망을 90억달러에 사들이겠다고 제안했다. 세계 1위 참치 기업인 태국의 타이유니온프로즌은 프랑스의 해산물 통조림 업체 MW브랜즈를 8억6720만달러에 인수할 계획이다.

딜로직에 따르면 올해 일본 기업이 해외에서 시도한 M&A는 이달 초까지 217억7000만달러 규모로 지난해 같은 기간(117억7000만달러)의 2배 가까운 수준으로 늘었다. 건수도 291건으로 전년 동기(244건)보다 증가했다. 인터넷 기업 라쿠텐은 지난 5월 미국의 온라인 업체 바이닷컴을 2억5000만달러에,6월엔 프랑스의 통신판매 사이트인 프라이스미니스터를 2억5500만달러에 각각 인수했다. NTT홀딩스는 지난달 남아프리카공화국의 IT 업체 디멘션데이터를 31억달러에 인수했으며 일본의 기린은 싱가포르의 음료 업체 프레이저앤드니브에 9억7500만달러를,일본 2위 철강 업체 JFE홀딩스는 인도의 JSW스틸에 10억2000만달러를 각각 출자키로 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석유공사는 영국의 원유탐사 업체 다나페트롤리엄을 인수하는 방안을 타진 중이다. 인도의 자동차 회사 마힌드라&마힌드라는 쌍용자동차 인수금액으로 최대 4억달러 제시를 검토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차이나데일리는 이날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의 자료를 인용해 올해 상반기 중국 기업들의 해외 M&A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 증가해 99건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이 중 14건이 해외 자원 기업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주로 호주와 아프리카 지역이 대상이다.

이는 아시아 지역의 경기가 상대적으로 빠른 회복세를 보이면서 재계가 자신감을 회복한 데다 15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은 엔화를 비롯해 바트(태국),루피아(인도네시아) 등의 통화가치가 달러나 유로보다 강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자국 통화의 강세는 M&A에 적극적인 기업 입장에선 해외에서 구매력을 높이는 호재라고 WSJ는 분석했다.

스티븐 토머스 UBS증권 M&A부문 책임자는 "아시아 기업들은 쌓아놓은 현금을 해외 기업 인수에 전략적으로 배분하고 있으며 신흥국 기업 인수까지 타진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