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테헤란 암시장 전전하는 기업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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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소연할 곳이 없다는 게 참 서글픕니다. "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A중공업 B 회장의 음성은 체념한 듯 담담했다. B 회장은 지난 6일 테헤란행을 결정했을 때만 해도 일단 가면 길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바이어들을 만나 대금 송금 방법을 찾아보는 등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결국 빈손으로 귀국해야 했다. 그는 테헤란을 헤매던 1주일 동안 "마치 고아 같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주이란 한국 대사관을 찾아갔을 때 들었던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고도 했다. "대사님이 아직 부임을 안 하셔서…."
B 회장은 20여년간 이란에 플랜트 건설용 장비를 수출해왔다. 주문만 하면 즉각 물건을 갖다주면서 신용을 쌓았다. 덕분에 유럽,일본업체들이 차지하던 자리를 꿰찰 수 있었다. 지난달 1일 미국이 이란제재법을 공포하기 전까지 그의 사업은 순탄했다. 3억달러짜리 공사 계약도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그러나 지난달 8일 한국 정부가 이란과의 금융 거래를 전면 중단키로 하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그동안 수출한 물건값이라도 받아야겠다는 생각에 이번에 테헤란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지만 현지 상황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암울했다.
B 회장은 블랙마켓을 전전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깊은 한숨을 쉰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유로화로 받은 수출 대금을 환전상을 통해 터키,우크라이나 등의 화폐로 바꿔 제3국으로 송금하는 방법이 그가 유일한 대안으로 추진하고 있는 일이다. "신용장도 없이 하는 거래라 위험천만하긴 하죠.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제가 머물던 호텔에 있던 한국 기업인들 모두 저와 똑같은 생각이었을 겁니다. "
B 회장은 뜻밖에도 정부 입장은 십분 이해한다고 했다. "이란이 북한제 무기를 사용한다는 거야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니 우리 정부도 동참할 수밖에 없겠죠." 그가 아쉬워한 것은 따로 있었다. "오직 이란 수출에만 목을 걸고 있는 생명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렇다면 누군가는 우리 사정을 들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대사가 두 명 있어도 모자랄 판에 한 달 가까이 공석이라니요. " 주이란 대사는 지난달 20일 전임 대사가 이임했고,신임 대사는 지난 15일에야 테헤란 사무실에서 첫 근무를 시작했다.
박동휘 산업부 기자 donghuip@hankyung.com
B 회장은 20여년간 이란에 플랜트 건설용 장비를 수출해왔다. 주문만 하면 즉각 물건을 갖다주면서 신용을 쌓았다. 덕분에 유럽,일본업체들이 차지하던 자리를 꿰찰 수 있었다. 지난달 1일 미국이 이란제재법을 공포하기 전까지 그의 사업은 순탄했다. 3억달러짜리 공사 계약도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그러나 지난달 8일 한국 정부가 이란과의 금융 거래를 전면 중단키로 하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그동안 수출한 물건값이라도 받아야겠다는 생각에 이번에 테헤란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지만 현지 상황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암울했다.
B 회장은 블랙마켓을 전전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깊은 한숨을 쉰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유로화로 받은 수출 대금을 환전상을 통해 터키,우크라이나 등의 화폐로 바꿔 제3국으로 송금하는 방법이 그가 유일한 대안으로 추진하고 있는 일이다. "신용장도 없이 하는 거래라 위험천만하긴 하죠.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제가 머물던 호텔에 있던 한국 기업인들 모두 저와 똑같은 생각이었을 겁니다. "
B 회장은 뜻밖에도 정부 입장은 십분 이해한다고 했다. "이란이 북한제 무기를 사용한다는 거야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니 우리 정부도 동참할 수밖에 없겠죠." 그가 아쉬워한 것은 따로 있었다. "오직 이란 수출에만 목을 걸고 있는 생명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렇다면 누군가는 우리 사정을 들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대사가 두 명 있어도 모자랄 판에 한 달 가까이 공석이라니요. " 주이란 대사는 지난달 20일 전임 대사가 이임했고,신임 대사는 지난 15일에야 테헤란 사무실에서 첫 근무를 시작했다.
박동휘 산업부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