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물값 '12월의 공포'…남반구 곡창지대 추수때 '라니냐' 절정
러시아 가뭄과 파키스탄 대홍수로 인해 글로벌 곡물 가격이 급등하고 있지만 이는 곡물가 파동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라니냐(La Nina)가 올 겨울 극성기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남반구 곡물 생산까지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6일 "라니냐가 글로벌 곡물가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며 "열대 태평양 해역의 수온 변동이 전 세계 주요 곡창지대의 강수량이나 기후 패턴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미국국립해양대기관리청(NOAA)은 라니냐 현상이 하반기 내내 지속돼 12월께 가장 왕성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라니냐의 최대 활동기가 지구촌의 '빵바구니(breadbasket)'라고 불리는 아르헨티나,브라질,남아프리카,호주 등 남반구 곡창지대 수확기와 겹치면서 글로벌 농업 생산에 비상이 걸렸다.

구체적으로 남반구의 주요 밀 생산지역인 아르헨티나와 호주 서부지역엔 가뭄이 닥칠 것으로 예상됐다. 호주 동부지역에서 강수량이 늘면서 약간의 생산 증가 요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밀 생산 감소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또 아르헨티나는 세계 2위 옥수수 수출국이자 3위 콩 수출국이기도 해서 이들 작물의 수급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브라질의 옥수수와 콩 재배지도 가뭄지역에 편입돼 두 작물의 생산량은 앞날을 내다보기 힘들게 됐다.

남미 북부지역에선 홍수 피해가 우려된다. 이에 따라 세계 최대 규모인 브라질 커피 재배지역에선 강수 시기가 늦어질 뿐 아니라 폭우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향후 커피 생산량을 가늠하기 어렵게 됐다. 자바 커피 등으로 알려진 인도네시아와 베트남도 홍수 피해의 사정권에 속해 있다.

이 밖에 라니냐는 초가을 미국 플로리다만 연안에 불어닥치는 허리케인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동남아시아 지역 몬순을 강화해 석유 시추와 천연가스 생산,주석,팜오일 생산 등 각종 원자재 가격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이미 인도네시아에선 홍수 피해로 팜오일 생산이 줄어들면서 팜오일 가격이 1년6개월래 최고치로 치솟았다.

이 같은 라니냐발 곡물가 급변동 가능성에 대해 코나 헤크 맥쿼리 원자재 담당 애널리스트는 "기상이변이 주요 작물들의 수확에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지 예측하는 것은 힘들지만 기후로 인한 곡물 가격 변동 가능성이 높아진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철저한 대비를 강조했다.

한편 러시아발 곡물파동으로 국제 밀 가격이 최근 두 달 새 60%나 오르고 보리 가격이 급등한 데 이어 라니냐발 글로벌 흉작 가능성까지 제기되자 헤지펀드를 비롯한 투기세력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곡물 전문 컨설팅회사 커머디티웨더그룹의 조엘 와이드노어 이사는 "라니냐가 올 겨울 남미를 중심으로 각 지역 작황에 얼마나 큰 피해를 줄지 투자자들이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

라니냐
스페인어로 '여자 아이'를 뜻하는 라니냐는 태평양 동쪽 칠레 앞바다 해수 온도가 수개월 이상 평균보다 0.5도 이상 낮은 상태가 지속되는 것으로 세계 각지에 이상저온과 홍수·가뭄 등 기상이변을 일으킨다. 올해 라니냐는 전 세계적인 가뭄을 야기했던 1997년 '대 라니냐' 이래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