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이란 제재 수위를 높여가고 한국 정부도 동참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현지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이 이란 테헤란 사무소 폐쇄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건설도 최근 테헤란 지사장을 카자흐스탄으로 보내는 등 사실상 현지에서 철수하는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

4일 이란 현지 소식통은 "테헤란에 있는 한국기업들은 요즘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초긴장 상태"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과실송금 루트가 차단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덧붙였다. 이란에서 번 돈을 한국에 보낼 방법이 봉쇄되고 있다는 얘기다.

◆금감원 "멜라트 서울지점 검사 착수"

정부와 금융당국도 대체 송금 루트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연합(EU)까지 이란 제재에 동참하면서 유로화 결제도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미 국내 은행들은 지난달 8일까지 계약이 이뤄진 수출입거래까지만 허용해주고,이후 발생한 이란과 관련한 수출입거래를 전면 중단한 상태다.

하지만 단기간에 이 같은 교착상태가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일 방한한 로버트 아인혼 미 국무부 대북 · 대이란 제재 조정관은 기획재정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한국 기업과 금융기관이 이란계 멜라트은행과의 거래에 신중하게 대처해 줄 것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에 있는 멜라트은행은 이란에서 발생한 무역거래대금이 들어오는 유일한 창구다.
이란 제재 불똥 튄 기업 "아예 문 닫아야 하나…"
이와 관련,금융감독원은 지난 6월부터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에 대한 정기검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금감원 관계자는 "미국의 이란 제재 요청과는 상관없이 4년마다 하는 정기검사"라고 말했다. 이란 소식통은 "우리 기업들로선 두바이 등 3국을 통한 송금 방법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현지 진출 기업들이 테헤란 연락사무소 직원들을 인근 국가로 옮기려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란 "미국에 협조하는 국가에 보복"

지난 2일 이란의 한 유력 신문은 "이란 정부는 미국의 제재 조치에 동참하는 국가를 대상으로 보복 조치에 나설 것"이라고 보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2005년 말 유엔의 이란 제재 결의안에 한국이 동참하면서 몇 개월간 이란과의 수출입이 전면 중단된 적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란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가면 향후 모든 정부 프로젝트 입찰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때문에 3국을 경유한 자금 송금방식도 조만간 차단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KOTRA 관계자는 "미국이 일본,아랍에미리트(UAE) 등에도 이란 제재에 동참할 것을 종용할 것"이라며 "이 경우 이란은 두바이 등을 통한 자금거래도 차단할 공산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란에 진출해 있는 기업들은 GS건설 등 플랜트 업체를 비롯 삼성전자 LG전자 등 가전업체,대우인터내셔널 SK네트웍스 코오롱 등 13개 업체다.

박동휘/김재후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