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만 해도 007가방 같은 걸 들고 다소 낡은 빌딩이나 학교,공사장 등을 돌던 방물장수들이 있었다. 가방을 열면 손톱깎이부터 지갑까지 온갖 물건이 가득했다. 누군가 다른 건 없느냐고 물으면 "있긴 있지만 비싸서"라고 말끝을 흐리며 조금 좋아뵈는 걸 내놓았다.

당신 형편에 이런 걸 살 수 있겠느냐는 식의 어투에 기분이 상한 나머지 무리해서 구입하고 나면 십중팔구 바가지였다. '자존심 건드리기' 판매법인 셈인데 지금도 일종의 고전처럼 곳곳에서 통용된다.

백화점 매장,특히 명품 매장은 대표적이다. 허름한 차림으로 들어가 케이스 속 물건을 보여달라고 하면 상품을 꺼내기도 전에 가격부터 말함으로써 기를 죽이거나 자존심을 긁는다. 일단 행색에 따라 등급을 매긴 뒤 '아니다' 싶으면 매장 안을 둘러보든 말든 본체만체 신경도 안쓰고 "여보세요" 불러도 시큰둥하기 일쑤다. 응대해봤자 시간과 기운 낭비라는 기색을 그대로 드러내는 가운데 '자존심 상하면 사든지'하는 식이다.

여기까진 그래도 양반이다. 대다수 명품 매장의 경우 상품을 팔 때와 팔고 난 뒤의 태도는 그야말로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처럼 딴판이다. 비 맞아 변색된 가방의 애프터서비스를 요구하니 "그러게 왜 명품을 비 맞혔니" 했다고 하거니와 산 지 며칠 안된 구두 바닥이 헐어 가지고 가면 그제서야 덧대는 창을 내놓으며 비용을 부담하라는 일도 다반사다.

가죽이 부드러워 상하기 쉬우면 판매할 때 사용법을 일러주고 필요한 조치를 취해줘야 마땅하거늘 무작정 팔곤 문제가 생기면 "명품을 그렇게 함부로 다루다니"라며 고객을 '무지한' 사람 취급하는 일도 잦다. 이런 일을 당하면 해당 매장은 물론 백화점 이미지 전체가 흐려진다.

비슷한 사례가 이어지다 보니 백화점마다 손님을 가장한 모니터요원을 동원, 서비스 실태를 조사한다고 한다. 암행어사의 이름은 '미스터리 쇼퍼' '카네기 엄마' '와타나베 부인' 등 다양하다.

카네기엄마란 수수한 복장으로 예고 없이 들른 카네기(철강왕)모친에게 친절했던 사원 덕에 해당 백화점이 대량 주문을 받았다는 데서 비롯됐다는 용어다. 고객은 상투적인 인사보다 진심어린 표정과 태도에 감동한다. 고객 만족경영이란 직원이 고객에게 미소짓는 게 아니라 고객이 직원에게 미소짓게 만드는 것이란 말도 있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