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 日 사과보다 경제협력 나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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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지않은 과거의 한 시기 국책(國策)을 그르쳐 전쟁에의 길을 걸어 국민의 존망을 위기에 빠뜨렸으며 침략에 의해 많은 국가들,특히 아시아 제국(諸國)의 사람들에게 엄청난 피해와 고통을 주었다. 역사의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여 여기서 다시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고,진심으로 사과의 마음을 표명한다. '
그 유명한 일본의 '무라야마 담화'다. 1995년 8월15일 일본의 종전 50주년을 맞아 당시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가 발표한 이 담화는 지금까지 일본 총리가 내놓은 가장 강한 수준의 사과 표현을 담고 있다. 이 담화가 새삼 한국에서 주목받고 있다. 한일병합(1910년 8월29일) 100년을 맞아 이달 말 간 나오토 총리가 한국민에 대한 사과 담화를 준비하고 있어서다. 여론의 관심은 '간 담화'의 사과 표현이 무라야마 담화 수준을 뛰어넘을 것인가,아닐 것인가에 쏠려 있다. 한국민의 감정을 잘 알고 있는 일본 정부와 정치권도 그 수위 조절에 고심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는 이제 일본의 사과 문구에 너무 집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본 총리가 어떤 단어를 동원해 사과하느냐에 일희일비하는 건 그만둘 때도 됐다. 중요한 건 사과 표현이 아니라 일본의 진정한 반성이다. 사회당 출신의 무라야마 총리도 '통절(痛切)''진심(眞心)' 등 전례 없는 단어를 써가며 사과했지만, 담화 발표 뒤 두 달도 안 돼 국회에서 "한일병합 조약은 적법하게 체결됐다"고 말해 한국을 뒤집어 놓았었다.
이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종전 60년 담화를 비롯해 대부분 총리들이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한다"고 했지만, 일본의 역사 인식이 획기적으로 바뀐 건 없다. 일본 정부는 여전히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외무성 홈페이지에서 주장하고 있고, 일부지만 역사왜곡 교과서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사과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런 뜻에서 한일병합 100주년 사과담화에 우리가 먼저 의연하고, 담담하자는 얘기다. 대신 두 나라의 건설적인 100년을 향해 미래지향적인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데 더 집중했으면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조치는 일본에도 당당히 요구할 수 있다. 명분보다는 실리를 추구하자는 말이다.
1965년 한 · 일 국교정상화 당시 밀실협상이란 이유 등으로 국민적 저항이 컸다. 하지만 냉정히 따져보면 당시 한 · 일 수교가 한국 경제발전에 도움이 된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경제개발을 위해 달러가 절실했던 상황에서 일본의 무상 3억달러,유상 2억달러 등 총 5억달러의 경제협력자금은 근대화의 종잣돈이 됐다. 산업의 쌀인 철을 만드는 포항제철(포스코), 국토의 대동맥인 경부고속도로가 그 돈으로 건설됐다. 이후 한국 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지금 일부 업종이나 기업은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의 약진에 일본 기업이 심각한 위협을 느낄 정도다. 이런 극일을 가능하게 했던 건 일본의 사과가 아니라 경제협력이었다.
그렇다고 지금 일본에 손을 벌리자는 건 아니다. 두 나라의 공존공영을 위해 대등한 협력 방안을 강구하자는 것이다. 2004년 이후 교섭이 중단된 한 · 일 자유무역협정(FTA)이 한 예가 될 수 있다. 앞서 대일역조 개선을 위한 일본의 부품 · 소재 기술 이전과 비관세 장벽 제거 등은 우리가 요구할 부분이다. 이를 통한 실질적 협력이 백마디 사과보다 백번 낫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
그 유명한 일본의 '무라야마 담화'다. 1995년 8월15일 일본의 종전 50주년을 맞아 당시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가 발표한 이 담화는 지금까지 일본 총리가 내놓은 가장 강한 수준의 사과 표현을 담고 있다. 이 담화가 새삼 한국에서 주목받고 있다. 한일병합(1910년 8월29일) 100년을 맞아 이달 말 간 나오토 총리가 한국민에 대한 사과 담화를 준비하고 있어서다. 여론의 관심은 '간 담화'의 사과 표현이 무라야마 담화 수준을 뛰어넘을 것인가,아닐 것인가에 쏠려 있다. 한국민의 감정을 잘 알고 있는 일본 정부와 정치권도 그 수위 조절에 고심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는 이제 일본의 사과 문구에 너무 집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본 총리가 어떤 단어를 동원해 사과하느냐에 일희일비하는 건 그만둘 때도 됐다. 중요한 건 사과 표현이 아니라 일본의 진정한 반성이다. 사회당 출신의 무라야마 총리도 '통절(痛切)''진심(眞心)' 등 전례 없는 단어를 써가며 사과했지만, 담화 발표 뒤 두 달도 안 돼 국회에서 "한일병합 조약은 적법하게 체결됐다"고 말해 한국을 뒤집어 놓았었다.
이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종전 60년 담화를 비롯해 대부분 총리들이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한다"고 했지만, 일본의 역사 인식이 획기적으로 바뀐 건 없다. 일본 정부는 여전히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외무성 홈페이지에서 주장하고 있고, 일부지만 역사왜곡 교과서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사과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런 뜻에서 한일병합 100주년 사과담화에 우리가 먼저 의연하고, 담담하자는 얘기다. 대신 두 나라의 건설적인 100년을 향해 미래지향적인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데 더 집중했으면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조치는 일본에도 당당히 요구할 수 있다. 명분보다는 실리를 추구하자는 말이다.
1965년 한 · 일 국교정상화 당시 밀실협상이란 이유 등으로 국민적 저항이 컸다. 하지만 냉정히 따져보면 당시 한 · 일 수교가 한국 경제발전에 도움이 된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경제개발을 위해 달러가 절실했던 상황에서 일본의 무상 3억달러,유상 2억달러 등 총 5억달러의 경제협력자금은 근대화의 종잣돈이 됐다. 산업의 쌀인 철을 만드는 포항제철(포스코), 국토의 대동맥인 경부고속도로가 그 돈으로 건설됐다. 이후 한국 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지금 일부 업종이나 기업은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의 약진에 일본 기업이 심각한 위협을 느낄 정도다. 이런 극일을 가능하게 했던 건 일본의 사과가 아니라 경제협력이었다.
그렇다고 지금 일본에 손을 벌리자는 건 아니다. 두 나라의 공존공영을 위해 대등한 협력 방안을 강구하자는 것이다. 2004년 이후 교섭이 중단된 한 · 일 자유무역협정(FTA)이 한 예가 될 수 있다. 앞서 대일역조 개선을 위한 일본의 부품 · 소재 기술 이전과 비관세 장벽 제거 등은 우리가 요구할 부분이다. 이를 통한 실질적 협력이 백마디 사과보다 백번 낫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