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후엔 유대인 거주지의 대명사 앤트워프에서 유대인은 그림자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벨기에 일간 데 스탄다르드)

유럽 내 유대인 중심지인 벨기에에서 유대인 엑소더스(대탈출)가 발생하고 있다. 히틀러의 인종말살 정책도 견뎌낸 벨기에 앤트워프의 유대인 커뮤니티가 수십년 안에 소멸될 위기에 몰린 것이다.

벨기에 일간 '데 스탄다르드'는 최근 '유대인들이 앤트워프를 떠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다이아몬드 상권을 장악한 앤트워프의 유대인 집단이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일자리 기회가 줄면서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세계 다이아몬드 유통의 70%를 담당하는 앤트워프의 상권은 전통적으로 '유대인'이 주도해왔다. 16세기 다이아몬드 연마법이 개발된 앤트워프는 유대계 보석 산업의 모태로 불린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앤트워프 대학살'이라 불리는 네덜란드계 나치 협력자들의 박해로 거주 유대인 중 65%가 사망했을 때도 유대계는 현지 다이아몬드 산업의 주도권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권을 인도계에 내주기 시작한 데다 반유대주의 정서까지 거세지면서 '생존'을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앤트워프에서 유대인 그룹이 설자리를 잃고 있는 것은 경제력의 기반인 다이아몬드 산업에서 지난 20년간 인도인들이 약진한 탓이 크다. 특히 다이아몬드 연마 분야에서 인도인들이 두각을 나타냈다. 15년 전만 해도 연마사의 70%가 유대인이었지만,현재 그 비율은 20%대 후반으로 떨어졌다. 일자리를 얻지 못한 유대인 젊은이들은 개도국 출신들과 저임금 임시직을 놓고 경쟁하거나 해외로 떠나고 있다. 여기에 2008년 닥친 글로벌 금융위기와 올해 유럽 재정위기는 사치품 산업인 다이아몬드 가공업에 직격탄을 날렸고 이는 유통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실제 벨기에 앤트워프 다이아몬드 거래소 게시판엔 다이아몬드 거래인 자격이 정지되거나 현지 유통 커뮤니티에서 추방당한 회원들의 사진과 이름이 매주 빼곡하게 붙는다. 대금을 지급하지 못했거나 회비를 내지 못했다는 게 이유다. 캐롤라인 저메인 앤트워프월드다이아몬드센터(AWDC) 홍보담당자는 "원래는 게시판 하나면 충분했는데 1년 이상 신용을 잃은 회원들의 명단이 게시판 두 개를 꽉 채우고 있다"고 전했다.

벨기에 전역으로 확산되는 '반유대주의 정서'도 유대인 엑소더스를 가속화하고 있다. 앤트워프에 거주하는 유대인 루벤 다비드는 "벨기에 전역에서 반유대주의를 느낄 수 있다"며 "많은 유대인들이 뉴욕과 런던처럼 반유대 정서가 덜한 곳으로 이주하려 한다"고 말했다. 앤트워프에서 대를 이어 베이커리를 운영하고 있는 클라인 블라트는 "미국이나 영국으로 유학간 젊은이들도 대부분 앤트워프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