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북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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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종 8년(1426년) 집현전 학자 권채 신석견 남수문에게 어명이 떨어진다. '일에 치여 제대로 공부할 시간이 없을 테니 당분간 본전(本殿)에 나오지 말고 집에서 열심히 독서를 해 성과를 내도록 하라….' 휴가를 줘 책 읽기에 전념하도록 한 '사가독서(賜暇讀書)'제다. 세종은 짧게는 몇 달,길게는 3년까지 집이나 한적한 절에서 책을 읽도록 배려했다. 독서에 필요한 비용을 대준 것은 물론 음식과 의복까지 내렸다.
세종 6년에 시작된 사가독서제는 간혹 중단되는 곡절을 겪으면서도 300년 이상 유지됐다. 성삼문 신숙주 서거정 등 걸출한 인재들이 혜택을 받았다. 19세기 영국에도 독서휴가제가 있었다. 빅토리아 여왕은 고위 관료에게 3년에 한 번씩 한 달가량 유급 휴가를 줬다.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고 지혜와 통찰을 구하라는 취지의 '셰익스피어 휴가'다.
고갈된 지력(知力)의 재충전이라면 요즘이 훨씬 더 필요하다. 문제는 휴가를 줘가며 독서를 권할 만큼 멋진 리더가 드물다는 거다. 그렇다면 정기 휴가중 평소 눈여겨 봐뒀던 책을 몰아서 읽는 수밖에 없다. 독서휴가,또는 '북캉스'를 계획해 보란 얘기다. 금쪽 같은 휴가에 웬 책타령이냐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교통체증에 적지않은 비용,휴가 후의 허탈감 등을 피하며 지친 몸과 마음을 여유롭게 추스르는 방법으론 그만한 게 없다.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937명의 직장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나홀로 휴가'를 보내겠다는 응답자가 37%였고, 그중 21.9%가 가장 하고 싶은 일로 독서를 꼽았다고 한다. 실속파들 사이에서 독서휴가가 자리를 잡아간다는 의미다. 신문들이 휴가철 책 특집을 내고 온 · 오프라인 서점들이 앞다퉈 '여름 추천 도서전'을 마련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삼성경제연구소는 'CEO가 휴가 때 읽을 책' 목록을 발표하기도 했다.
땡볕과 더위에 지쳤는데도 휴가 분위기에 들떠 밤새 술판 고스톱판 벌이다간 몸만 축나기 십상이다. 휴가 피로를 풀기 위해 또 다른 휴가가 필요하다는 소리까지 듣게 된다. 휴가를 모두 책 읽는데 쓰기가 억울하면 휴가지로 책을 몇 권 챙겨갈 일이다. 깊은 계곡이나 산사에서,또는 파도소리 들으면서 책 읽는 맛은 색다르다. 뭔가 화끈하게 즐겨야 휴가다운 휴가를 보냈다고 여기는 습성에서 이젠 벗어날 때가 됐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세종 6년에 시작된 사가독서제는 간혹 중단되는 곡절을 겪으면서도 300년 이상 유지됐다. 성삼문 신숙주 서거정 등 걸출한 인재들이 혜택을 받았다. 19세기 영국에도 독서휴가제가 있었다. 빅토리아 여왕은 고위 관료에게 3년에 한 번씩 한 달가량 유급 휴가를 줬다.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고 지혜와 통찰을 구하라는 취지의 '셰익스피어 휴가'다.
고갈된 지력(知力)의 재충전이라면 요즘이 훨씬 더 필요하다. 문제는 휴가를 줘가며 독서를 권할 만큼 멋진 리더가 드물다는 거다. 그렇다면 정기 휴가중 평소 눈여겨 봐뒀던 책을 몰아서 읽는 수밖에 없다. 독서휴가,또는 '북캉스'를 계획해 보란 얘기다. 금쪽 같은 휴가에 웬 책타령이냐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교통체증에 적지않은 비용,휴가 후의 허탈감 등을 피하며 지친 몸과 마음을 여유롭게 추스르는 방법으론 그만한 게 없다.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937명의 직장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나홀로 휴가'를 보내겠다는 응답자가 37%였고, 그중 21.9%가 가장 하고 싶은 일로 독서를 꼽았다고 한다. 실속파들 사이에서 독서휴가가 자리를 잡아간다는 의미다. 신문들이 휴가철 책 특집을 내고 온 · 오프라인 서점들이 앞다퉈 '여름 추천 도서전'을 마련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삼성경제연구소는 'CEO가 휴가 때 읽을 책' 목록을 발표하기도 했다.
땡볕과 더위에 지쳤는데도 휴가 분위기에 들떠 밤새 술판 고스톱판 벌이다간 몸만 축나기 십상이다. 휴가 피로를 풀기 위해 또 다른 휴가가 필요하다는 소리까지 듣게 된다. 휴가를 모두 책 읽는데 쓰기가 억울하면 휴가지로 책을 몇 권 챙겨갈 일이다. 깊은 계곡이나 산사에서,또는 파도소리 들으면서 책 읽는 맛은 색다르다. 뭔가 화끈하게 즐겨야 휴가다운 휴가를 보냈다고 여기는 습성에서 이젠 벗어날 때가 됐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