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가격이 불안하다. 특히 코코아 커피 등 기호식품의 가격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초콜릿 원료인 코코아의 경우 수입가격이 33년래 최고치로 뛰어오르는가 하면,커피 가격은 최근 한달반 새 20% 이상 급등했다. 원자재 국제 시세는 대부분 기상 악화에 따른 생산량 감소 등으로 수요 · 공급의 균형점이 바뀌면서 큰 추세가 형성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급등락을 노린 헤지펀드의 노골적인 사재기로 인해 출렁이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상품가격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다.


◆펀드 하나가 초콜릿 시장 흔들어

뉴욕타임스(NYT)는 25일 아마자로펀드를 운용하는 앤서니 워드 매니저가 코코아 원두 가격을 올리기 위해 물량을 집중적으로 매집해 시세를 조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마자로는 국제 상품 시장에서 대표적인 헤지펀드로 꼽힌다. 워드는 현재 연간 전 세계 코코아 원두 생산량의 7%를 확보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시세를 조종할 수 있는 물량이다. 이러다보니 시장에선 워드를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초콜릿 공장 사장인 '윌리 웡카'에 비유하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아마자로에서 임원으로 근무했던 팀 스펜서는 "코코아 원두 시장 정보와 관련해 세계적으로 그와 맞먹을 사람을 찾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아마자로가 런던선물시장에서만 코코아 원두 선물에 10억달러를 투자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최근에는 런던선물시장에서 한꺼번에 24만1000t의 코코아 원두를 사들였다. 50억개 이상의 초콜릿 바를 만들 수 있는 규모다. 코코아 원두 가격이 지난 18개월 동안 150% 오르고,1977년 이후 33년 만에 최고가격을 기록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거래와 무관치 않다.

이를 두고 시장에서는 정상적 투자인지 아니면 인위적으로 가격을 끌어올리려는 매매인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독일 코코아무역연합회는 런던거래소에 시세 조종 여부를 조사해줄 것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일부 영국 언론들은 워드 매니저를 두고 '007'영화의 악역인 '골드핑거'에 빗대 '초콜릿 핑거'로 지칭하며 비판하는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독일 코메르츠방크의 유진 와인버그 애널리스트는 "워드 매니저의 코코아 원두 매집 시기는 절묘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거래소 측은 조사 결과 불법 거래 혐의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NYT는 전했다.


◆가격변동성 키우는 헤지펀드

헤지펀드가 농산물을 비롯해 국제 원자재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사례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날씨 등에 따라 가격 변동폭이 큰 농산물은 헤지펀드의 오랜 먹잇감이었다. 아마자로의 경우 2002년에도 코코아 20만4000t을 매입해 두 달 새 4000만파운드를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들어 커피 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한 것도 헤지펀드 등 투기세력의 매집이 영향을 미친 결과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뉴욕국제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초만 해도 파운드당 1.33달러였던 커피 원두 국제 가격은 지난 23일 1.66달러로 치솟았다. 한달반 새 20% 이상 급등한 셈이다. 지난 5월부터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원당(raw sugar) 가격도 마찬가지다. 원당은 뉴욕상품거래소에서 5월 초만 해도 파운드당 10~12센트에 거래됐다. 그러던 것이 이달 중순 이후 18센트를 넘어서면서 50% 이상 값이 올랐다.

이경민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지금은 헤지펀드들이 농산물 투자에 다 들어와 있는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며 "특히 베트남 등 제3국가에서 소비량이 늘고 있는 코코아 커피 설탕 등 기호식품에 대한 투기세력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농산물,특히 기호식품의 가격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조성배 동양증권 원자재 애널리스트는 "중국 경제 회복세가 다시 빨라질 것으로 점쳐지는 내년 초부터는 투기자금과 실수요자의 물량 확보 움직임이 맞물려 가격이 급등락하는 농산물이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뉴욕=이익원 특파원/이관우 기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