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분양 때 프리미엄이 1억5000만원까지 붙었어요. 그때 투자 목적으로 프리미엄을 주고 분양권을 사들였다가 최근 입주를 포기하면서 계약금 10%를 날린 계약자가 200~300명은 될 겁니다. "(인천 영종자이 인근 L중개업소 관계자)

18일 인천경제자유구역 영종운남지구 내 영종자이 아파트단지.지난해 11월 입주가 시작됐지만 단지 내에서 주민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날 오후 어렵게 만난 주부 양모씨(41)는 "입주를 포기하면 분양권을 살 때 준 프리미엄 1억5000만원에 마이너스 프리미엄 5000만원까지 2억원가량 손해를 보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들어왔다"며 "나머지 계약자들은 대부분 3000만원가량의 계약금을 손해보면서 입주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현재 영종자이 입주율은 30% 안팎.GS건설은 총 1022채 중 입주 포기 및 미분양 물량 583채를 대상으로 자산운용사를 통해 유동화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통째로 공매까지

인천 고양 파주 용인 등 수도권과 대구 등 지방 곳곳에서 입주를 포기하거나 거부하는 계약자가 급증하고 있다. 이들은 시행사나 건설사를 상대로 계약 해지를 요구하거나 잔금 납부 시기 연장,분양가 인하,추가 무상 옵션 등을 제시하며 집단행동에 나서고 있다.

공항신도시 운서역(공항철도)에서 영종하늘도시 방향으로 2㎞ 거리에 있는 운서지구 내 금호어울림1차 아파트.

아파트단지 앞은 운서초등학교만 있을 뿐 잡초가 우거진 허허벌판이다. 328세대 가운데 절반인 164세대가 지난해 도시기반 시설 미비 등을 이유로 입주를 포기했다. 입주를 포기한 아파트 164채는 공개 매각 처지에 놓였다. 입주 포기 세대 모두 중도금 대출을 받았지만 빚을 갚지 않았고 보증을 선 시행사인 천산개발과 시공사인 금호산업 역시 상환 능력이 없다며 중도금을 갚지 않고 있다.

입주를 포기한 계약자들은 "중도금은 시행사로 들어갔고 계약금 10%도 돌려받지 못한다"며 "중도금 상환은 분양회사 측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아파트의 분양면적은 109㎡(약 33평),128㎡(약 39평),151㎡(약 46평) 등 세 가지로 3.3㎡당 900만원에서 1100만원 선에 분양됐다. 시행사인 천산개발과 시공사인 금호산업은 연대보증을 통해 입주 포기 세대의 중도금(분양대금의 50%)으로 1억5000만원에서 2억원씩 대출을 받았다. 중도금 상환 원리금은 총 384억원.

따라서 보증을 선 천산개발과 금호산업이 중도금을 상환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하지만 양사 모두 갚을 능력이 없다. 천산개발은 무더기 입주 포기로 잔금을 받지 못해서,금호산업은 워크아웃 상태인 데다 시행사로부터 공사비 333억원을 받지 못한 상황이어서 자금난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1순위 채권자인 농협 측은 "시행사 시공사 모두 상환 능력이 없어 내달께 164채에 대한 공매 처분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잔금 못 내겠다"…입주 분쟁 봇물

충북 청주시 복대동에 건립된 초고층 아파트인 신영 지웰시티.전체 분양 물량 4300채 중 1차 물량인 2164채에 대한 입주가 지난 9일 시작됐다. 하지만 계약자 543명은 입주와 잔금 납부를 거부하고 있다. 입주 예정자인 김모씨(35)는 "당초 신영이 약속했던 백화점 입점이나 청주시청사 이전과 같은 약속이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신영 관계자는 "백화점과 시청사 부지를 공급했음에도 오려는 곳이 없어 유치가 지연되고 있다"며 "이를 약속 위반이라며 입주와 잔금 납부를 거부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반박했다.

입주 포기는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한 계약자모임이 주축이 돼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분양가 할인을 요구하거나 시공상 문제점을 들어 "집회 및 시위를 갖는 것은 물론 계약 해지 소송도 불사하겠다"며 시행사와 건설사들을 압박하고 있다.

한 인터넷 카페 회원은 "아파트 하나 잘못 계약해 인생이 이렇게 꼬일 수 있느냐"며 하소연했다.


◆대구는 최악 상황

미분양 아파트만 1만6000여채로 전국 최대인 대구는 잇단 대규모 입주 포기가 우려된다. 이 같은 상황은 2007년 이후 미분양 아파트 처리에 골머리를 앓던 건설사들이 궁여지책으로 미분양 아파트를 싼 값에 임대분양으로 전환했으나 미분양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올해 대거 전세 만기가 돌아온 데 따른 것이다. 이 같은 물량은 당시 분양된 전체 아파트 단지의 32%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달서구 성당 래미안 · e편한세상의 경우 분양가 2억7000만원 수준의 100여㎡ 아파트를 8000여만원에 임대분양했는데 올해 만기가 돌아오면서 전세보증금을 1억4000만원 이상으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입주자들은 급격한 전세가격 인상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며 입주를 포기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역의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2년차 이상의 아파트에서 입주 포기가 대량으로 발생하면 이미 5~6년 전 분양가 수준으로 돌아간 대구지역 아파트 시장에 또 한 차례 충격파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정선/성선화/인천=김인완/대구=신경원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