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시한폭탄' LH] (3) "지역 사업·보상금 줄이지 마라"…지자체장도 외압 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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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치인 '지역민원' 봇물
LH(한국토지주택공사) 경영진은 여야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들로부터 걸려 오는 민원전화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려 있다. LH 임원들은 한편에선 주말을 반납한 채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면서,다른 한편으로는 국회의원들과 지자체장들의 방문이나 전화에 응대하느라 파김치가 될 정도라고 하소연한다.
민원을 제기하는 정치인은 거물급부터 경기도 고양 파주 평택,경남 양산 등의 기초자치단체장까지 다양하다. 새로 바뀐 지자체장의 경우 공약사항이라며 막무가내로 민원을 제기한다.
요구는 단 하나다. 자신의 지역구나 관할구역에 계획된 신도시조성 택지개발 등의 사업을 계속하라는 것이다.
아이로니컬한 것은 국회의원들이 국회에선 LH에 대해 획기적인 재무구조 개선 대책을 내놓으라고 닦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야당의원들은 올 정기국회에서 LH 빚 문제를 여당을 공격할 최대 무기로 삼을 태세다.
"국회의원들이 국회에선 LH 빚을 줄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정작 자기 동네 사업은 계속하라고 압력을 넣고 있는 건 모순이죠."(국토해양부 한 간부).국회의원과 단체장들의 민원성 사업을 막지 않고서는 LH의 재무구조 개선이 요원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회는 지역 민원 제기의 장(場)
지난 6월 18대 국회 하반기(2010년 6월~2012년 6월) 원 구성 뒤 처음 열린 국토해양위원회 LH 업무보고 자리.국회TV 등을 통해 전 국민에게 생방송되는 자리였지만 국회의원들은 LH 경영진 앞에서 민원을 제기하기에 바빴다. 한나라당 A의원은 "지역구 현안인 신도시 조성사업은 지역 간 균형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니까 역점적으로 추진해 달라"고 말했다. 질의에 나선 B,C의원 등도 똑같은 패턴이었다. LH 부채를 걱정하는 듯하다가 결론은 '지역구 사업 부탁'이었다.
비공개 회의에선 읍소나 부탁이 아니라 호통과 협박이 동원된다. 작년 12월 예산결산위원회 종합 정책질의에서 D의원은 LH 주무부처인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에게 "LH가 4년 동안 A지역의 주거 환경개선 사업을 검토만 하다 중단했다. 뭘 더 검토하겠다는 거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뿐만이 아니다. 지자체들은 국회의원을 비롯해 지역시민단체 학계 등을 총동원해 LH를 압박한다. 지역사업 관련 회의나 국회의원실에 불려 나가느라 경영진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이라는 게 LH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산업단지 · 주거환경개선사업 민원 봇물
국회의원 및 단체장들의 민원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난다. 도시지역이냐,지방이냐에 따라 현안이 다르기 때문이다. 경북 등 지방에선 주로 산업단지 지정을 요구하는 사례가 많다. 갈수록 쪼그라드는 지역경제와 인구감소 문제를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카드인 까닭이다. 그러나 경기도 대전 등 도시지역에선 주거환경개선사업에 나서 달라는 민원이 많다. 지역 최대 고민거리인 노후 불량주택 밀집 지역을 LH의 힘을 빌려 개선해보려는 의도다. 국회의원들이 표를 의식해 자기 지역구에 시급하지 않은 도로 공항 등을 건설하도록 국토부 등 정부에 민원을 넣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지역 민원성 사업의 폐해는 심각하다. 당장 LH가 118조원이라는 빚더미에 올라앉은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지역민원성 사업이다. 또 수요를 고려하지 않고 조성한 산업단지는 미분양 문제를 야기했다. 올해 3월까지 지정된 산업단지는 831곳,개발면적은 약 1366㎢다. 이 가운데 여의도 면적의 2배인 6㎢가 미분양으로 남아 있다. 특히 제주도의 미분양률은 26.2%나 된다.
서울 구로구 가리봉뉴타운,대전 동구 주거환경개선사업 등 전국에서 진행 중인 도시재생사업이 LH 자금 사정으로 줄줄이 멈춰서면서 개발계획을 믿고 부동산을 매입한 투자자들과 슬럼화에 시달리는 주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조성근/민지혜 기자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