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전 인물열전] (10)소하(蕭何)‥유방 보좌해 제국 창건…견제 속에서도 화를 피한 처신의 달인
소하(蕭何)는 고조 유방의 오랜 친구로 유방이 기병할 때부터 줄곧 그를 도와 한나라를 세운 다섯 공신 가운데 으뜸이었다. '성공해도 소하요,실패해도 소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창업에서 그의 위상은 절대적이었다. 불후의 공적을 세웠던 그였으나 조정 무관들의 견제와 함께 유방의 끊임없는 의심을 받아 전전긍긍하면서도 결국 무난히 난세를 살다갔다.

《사기》의 '소상국(蕭相國)세가'에 따르면 소하는 패현(沛縣) 풍읍(豊邑) 사람으로 법률에 통달해 일처리하는 것이 공평하고 유방이 벼슬하지 않고 있을 때 벼슬아치 신분으로 그를 보호해줬다. 고조가 작은 관리로 도적을 체포하는 일에 관여할 때도 소하는 늘 곁에 있었으며,고조가 벼슬하러 함양에 갔을 때도 소하만은 남들보다 더 많은 500전을 주었다고 한다.

고조가 군대를 일으켰을 때 여러 장수들이 재물창고로 달려가 그것들을 나누어 가졌으나,소하는 진나라 승상부(丞相府)와 어사부(御史府)의 법령과 도서들을 거두어서 감추었다. 유방이 한왕(漢王)에 오르자 소하는 승상이 되었다. 함양이 불타 모든 문서가 사라졌으나 소하가 확보한 자료를 통해 유방은 요새의 위치나 인구 등을 소상히 알 수 있었다. 유방이 군사를 이끌고 동쪽 삼진(三秦)을 평정할 때도 소하는 승상으로 남아 파촉(巴蜀)을 지키며 지역을 안정시키고 보좌했다. 그는 법령과 규약 등을 만들 때도 고조의 재가를 받고 나서 일을 처리해 절대적인 신임을 얻었다.

한 제국이 세워지고 논공행상을 하는 자리에서 신하들은 저마다 공을 내세웠다. 소하의 공을 첫 번째로 두려는 유방에게 공신들이 이의를 제기했다. 자신들은 전장에서 100번이나 수십번씩 싸워 땅을 빼앗았는데 소하는 겨우 글이나 읽고 의논이나 했으니 그에게 최상위 등급을 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러자 유방은 사냥개와 사냥의 차이를 비유로 들어 이렇게 말했다. "사냥에서 들짐승과 토끼를 쫓아가 죽이는 것은 사냥개지만,개 줄을 풀어 짐승이 있는 곳을 알려주는 것은 사람이오.지금 여러분들은 한갓 들짐승에게만 달려갈 수 있는 자들뿐이니,공로는 마치 사냥개와 같소.소하로 말하면 개의 줄을 놓아 방향을 알려주니 공로는 사냥꾼과 같소."

여러 신하들은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공신들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자 고조는 소하에게 많은 봉읍을 내렸다. 그런데 작위를 첫 번째에 두려고 하니 일등공신 자리를 놓고 다투는 조참이 마음에 걸렸다. 마침 관내후(關內侯) 작위 이름으로 스무 등급 중 열아홉 번째인 악군(鄂君)이 "소하가 첫 번째이고,조참이 두 번째"라고 진언했다. 결국 유방은 소하를 첫 번째로 하고,소하가 칼을 차고 신을 신고 궁전에 오를 수 있도록 할 정도로 예우했다. 그러고 나서 6년 후에 진희가 모반하고 회음후(淮陰侯 · 한신)가 모반했다가 주살되는 사건이 일어나자 유방은 모반 평정에 공을 세운 소하에게 식읍 5000호를 더하고 군사 500명과 도위(都尉) 1명을 보내 상국의 호위병으로 삼도록 했다.

모두들 소하에게 축하하는 상황에서 소평(召平)이란 자는 유방이 당신을 떠보기 위한 것이니 봉읍을 받지도 말고 오히려 당신의 재산을 군비에 보태라고 조언하자 소하는 그대로 따랐다. 그러나 유방은 소하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면서 그의 동태를 살폈다. 소하는 정권과 거리를 두면서 자신에게 다가올 화살을 피해갔다. 그러나 결국 유방은 백성들에게 신망이 두터운 그를 일시나마 족쇄를 채웠다가 풀어주는 우를 범한다. 물론 겉으로는 관계가 회복된 듯했으나 그것은 미봉에 불과했을 것이다.

소하는 자신의 후임으로 관계가 좋지 않았던 조참을 추천하고 밭과 집을 살 때 반드시 외딴 곳에 마련했고,집을 지을 때에도 담장을 치지 않았을 정도로 검소했다.

정권이 탄생하고 그 정권의 일등공신이 돼 합당한 대우를 받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늘 그것을 시기하는 무리들은 존재한다. 게다가 절대 권력자의 불신과 감시마저 받는 경우 처신은 더욱 힘들 수 있다. 만일 소하처럼 버려야 할 곳과 버릴 것을 알고 청렴하고 소신있게 일한다면 화는 피할 수 있지 않을까.

김원중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wjkim@ko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