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복지병 수렁'에 빠지나] (4) '용돈' 전락 노령연금 올 4조…이돈이면 80만명 최저생계비 보장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4) 미래의 골칫덩이 기초노령 연금
2006년 국민연금 개혁때 야당 설득위해 도입
올 65세 이상 375만명에 독고 9만원·부부 14만원 지급
노령화로 대상·액수 눈덩이…20년 후엔 지급액 30조 넘을 듯
2006년 국민연금 개혁때 야당 설득위해 도입
올 65세 이상 375만명에 독고 9만원·부부 14만원 지급
노령화로 대상·액수 눈덩이…20년 후엔 지급액 30조 넘을 듯
#1.남편과 사별하고 서울에서 홀로 사는 이현미씨(69)의 통장에는 매달 9만원이 들어온다. 정부가 주는 기초노령연금이다. 김씨는 이 돈을 '나라에서 주는 용돈'으로 생각한다. 자녀들이 매달 주는 40만원과 월세 수입으로 25만원을 받는 그에게 9만원이란 돈은 '받으면 좋지만 안 받아도 크게 지장 없는 돈'이다. 김씨는 "형편이 정말 어려운 사람들에게 가야 할 돈을 내가 받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고 말했다.
#2.서울에 사는 김인수씨(68)는 기초노령연금을 탈 때면 속이 상한다. 자신보다 훨씬 잘 사는 이웃 노인들이 돈을 받았다며 가욋돈처럼 가볍게 쓰는 것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집도 있고 자식들이 잘 살아 부족함 없이 사는 노인들과 돈이 별로 없는 내가 똑같은 돈을 받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 아니냐"며 "멍청한 제도"라고 분개했다.
◆정치권 타협의 산물
2008년 1월 도입된 기초노령연금은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과 자산 기준으로 상위 30%를 제외한 사람들에게 매월 일정액을 연금으로 지급하는 제도다. 올해 4월부터 내년 3월까지 매달 노인 단독세대(월 소득인정액 70만원 이하)는 9만원,부부세대(월 소득인정액 112만원 이하)는 14만4000원을 받는다.
보건복지부는 기초노령연금을 "노인들이 국가 발전과 자녀 양육에 헌신해 온 노고에 보답하려는 제도"라고 정의하고 있다. 기초노령연금에 대한 복지부의 홍보 문구는 '이 땅의 부모님께 드리는 대한민국의 마음의 카네이션'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2006년 말 국민연금을 개혁하는 과정에서 여 · 야 합의를 끌어내기 위한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었다. 연금개혁에 야당이 동의하는 조건이 기초노령연금 도입이었다.
◆개인에겐 쥐꼬리,국가엔 큰 부담
연금 수혜자의 대부분이 기초노령연금을 '용돈 연금' 또는 '쥐꼬리 연금'이라고 얕잡아 부른다. 말 그대로 용돈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가 재정에는 엄청난 부담이다. 개인이 받는 금액은 적지만 수혜자 수가 올해 375만명에 달하기 때문이다. 지자체를 포함한 정부가 올해 예상하고 있는 기초노령연금 지출액은 3조7000억원.최저생계비를 보장하는 기초생활보장(7조3000억원)과 건강보험 재정 지원(4조3000억원)에 이어 지출 순위 3위다.
문제는 앞으로 이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는 사실이다. 고령화로 인해 대상자가 증가할 뿐만 아니라 연금 수령액마저 늘어나도록 설계돼 있다. 65세 이상 노인은 작년 519만명이었으나 순차적으로 늘어 16년 후엔 두 배가 된다. 여기에다 연금 가치를 2028년까지 현재의 두 배 수준으로 늘리도록 기초노령연금법에 규정해 놓고 있다. 기초노령연금은 현재 국민연금 전체 가입자 평균소득의 5%를 지급하도록 돼 있는데 이를 10%로 단계적으로 높여나가도록 규정한 것이다.
또 평균소득 상승률과 물가상승률이 자동 반영되도록 했다.
작년 조세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의 지출 수준과 물가상승률이 그대로 유지된다고 가정했을 때 기초노령연금 지급액은 10년 뒤 10조원,20년 뒤엔 3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됐다. 박형수 조세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올해 국내총생산(GDP)의 0.38% 수준인 기초노령연금 지출은 고령화와 지급액 증가로 인해 2050년에는 GDP의 1.72%까지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복지 취지를 살려야
복지 제도는 자립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사회가 돕는 일종의 공공부조다. 이런 점에서 보면 기초노령연금은 근본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중산층에 해당하는 사람에게까지 연금을 지급함으로써 정작 사회의 도움이 절실한 극빈 노인층이 외면받고 있기 때문이다. 기초노령연금으로 올해 쓰일 3조7000억원은 빈곤층에 집중적으로 쓸 경우 80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의 최저생계비를 보장할 만큼 큰 돈이다. '용돈'으로 취급받는 기초노령연금을 제대로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복지의 사각지대를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기초노령연금의 재원을 '저소득층 집중 지원'으로 바꾸는 것이 한국의 실정에도 맞고 재정 부담도 적다고 말하고 있다.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의 기초노령연금과 유사한 제도를 선진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며 "저소득층의 생활 개선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 전체 국민에게 조금씩 돈을 나눠주는 것보다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최경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도 "기초노령연금을 믿고 국민이 저축을 그만큼 덜해 결과적으로 복지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며 '기초노령연금이 복지에 기여하는 측면보다는 재정에 장기적으로 부담을 주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