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마루 장식장의 산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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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현관 마루 장식장에는 3년 묵은 산삼주가 있다. 산을 좋아하고 약술 담그기가 취미이신 아버지 작품이다. 사실 아버지는 공부를 좋아하신다. 새로운 직업으로 전환하시던 숱한 도전의 시기에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으셨다.
아버지가 산을 찾는 주된 목적은 귀한 약술 재료를 확보하는 것이다. 한번 시작하면 꼭 끝을 보는 성격이다. 필자가 한의학을 공부하게 된 것은 순전히 아버지의 치밀한 진로 탐색전 결과이다.
초등학교 6학년부터 공주 대접받으며 등하교 길을 아버지와 같이했다. 집에서 늘 먼 곳으로 배정받은 학교를 다니는 딸에게 아버지가 해주신 선물이다. 수다쟁이라서 언제나 그날 있었던 일을 아버지와 나누었고,좋은 일이 생기면 딸보다 더 기뻐하시는 터라 아버지를 즐겁게 해줄 일들을 만드느라 공부도 열심히 했다.
고3 대학입시 지원서 작성일이 다가오자 조용히 다가와 하신 말씀이 "한의대 가면 좋겠다"이다. 아버지의 끈질긴 설득에 비행기 만드는 공대를 가려 했던 마음을 접었다. 항상 곁에 계셨던 아버지여서인지 내 적성을 너무 잘 알고 계셨다.
한의학과 진로 탐색에 나름의 전쟁을 치르셨는지 구구절절 수긍이 가는 이유를 대시는 통에 손발을 다 들었다. 대학 입학 면접에서 '왜 한의대를 들어오려고 하느냐'는 면접관의 질문에 '동양의 신비한 침술을 연구하러 왔습니다'라고 대답할 정도로 '사전 무장'까지 시켜 주신 우리 아버지.2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헬리콥터 맘' 혹은 '치맛바람'을 일으키는 요즈음의 아줌마에 견줄 수 있지 않을까.
딸이 한의대에 입학한 후 아버지는 아무도 모르게 한약 공부를 하셨다. 딸의 한의원에서 약재를 담당할 준비를 하신 게다. 지금 다니는 정부출연 연구기관에 가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낙담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대신에 한약 공부하며 다니신 산에서 약술 재료를 많이 찾으셨고 산을 좋아하게 되셨다.
산을 '연구하신' 아버님 덕분에 당연 '대박'난 것은 우리 가족이다. 전국을 돌며 아버지는 가족 모두 한 뿌리씩 먹을 수 있을 만큼 산삼을 캐오셨다. 언제고 아주 기쁜 날이 생기면 함께 나누라고 주신 산삼주까지 아버지의 한약 공부 덕택에 좋은 선물을 얻었다. 우리 집 마루 장식장 '보물단지'의 사연이다.
중3 딸아이가 얼마 전 장래희망에 대해 마음을 정하기까지 사실 나는 아이 적성이 뭔지,백지상태였다. 직장에서의 일이 바쁘고,밀린 집안일을 하다 보니 대화 부족이 가장 큰 이유이리라.아버지에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자식에게 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산삼주를 열게 될 아주 기쁜 날이 찾아올 거라는 기대를 갖게 해준 아버지.오늘도 우리 집 마루에서는 아버지의 산삼주가 익어간다.
최선미 한국한의학연구원 본부장 smchoi@kiom.re.kr
아버지가 산을 찾는 주된 목적은 귀한 약술 재료를 확보하는 것이다. 한번 시작하면 꼭 끝을 보는 성격이다. 필자가 한의학을 공부하게 된 것은 순전히 아버지의 치밀한 진로 탐색전 결과이다.
초등학교 6학년부터 공주 대접받으며 등하교 길을 아버지와 같이했다. 집에서 늘 먼 곳으로 배정받은 학교를 다니는 딸에게 아버지가 해주신 선물이다. 수다쟁이라서 언제나 그날 있었던 일을 아버지와 나누었고,좋은 일이 생기면 딸보다 더 기뻐하시는 터라 아버지를 즐겁게 해줄 일들을 만드느라 공부도 열심히 했다.
고3 대학입시 지원서 작성일이 다가오자 조용히 다가와 하신 말씀이 "한의대 가면 좋겠다"이다. 아버지의 끈질긴 설득에 비행기 만드는 공대를 가려 했던 마음을 접었다. 항상 곁에 계셨던 아버지여서인지 내 적성을 너무 잘 알고 계셨다.
한의학과 진로 탐색에 나름의 전쟁을 치르셨는지 구구절절 수긍이 가는 이유를 대시는 통에 손발을 다 들었다. 대학 입학 면접에서 '왜 한의대를 들어오려고 하느냐'는 면접관의 질문에 '동양의 신비한 침술을 연구하러 왔습니다'라고 대답할 정도로 '사전 무장'까지 시켜 주신 우리 아버지.2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헬리콥터 맘' 혹은 '치맛바람'을 일으키는 요즈음의 아줌마에 견줄 수 있지 않을까.
딸이 한의대에 입학한 후 아버지는 아무도 모르게 한약 공부를 하셨다. 딸의 한의원에서 약재를 담당할 준비를 하신 게다. 지금 다니는 정부출연 연구기관에 가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낙담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대신에 한약 공부하며 다니신 산에서 약술 재료를 많이 찾으셨고 산을 좋아하게 되셨다.
산을 '연구하신' 아버님 덕분에 당연 '대박'난 것은 우리 가족이다. 전국을 돌며 아버지는 가족 모두 한 뿌리씩 먹을 수 있을 만큼 산삼을 캐오셨다. 언제고 아주 기쁜 날이 생기면 함께 나누라고 주신 산삼주까지 아버지의 한약 공부 덕택에 좋은 선물을 얻었다. 우리 집 마루 장식장 '보물단지'의 사연이다.
중3 딸아이가 얼마 전 장래희망에 대해 마음을 정하기까지 사실 나는 아이 적성이 뭔지,백지상태였다. 직장에서의 일이 바쁘고,밀린 집안일을 하다 보니 대화 부족이 가장 큰 이유이리라.아버지에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자식에게 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산삼주를 열게 될 아주 기쁜 날이 찾아올 거라는 기대를 갖게 해준 아버지.오늘도 우리 집 마루에서는 아버지의 산삼주가 익어간다.
최선미 한국한의학연구원 본부장 smchoi@kiom.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