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압중장비 전문업체 A사 K사장은 지난 5월 말 주거래은행으로부터 날벼락 같은 통보를 받았다. 연 9%의 대출금리를 19%까지 올리겠다는 내용이었다. 대출금을 연체한 데다 최근 신용등급 평가에서 10등급 가운데 7등급을 받았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이 회사는 지난해 자금난을 겪으면서 25억원을 빌렸다. 당초 운전자금과 원자재 구매에 활용하려고 했지만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면서 이 돈 대부분을 원자재 사들이는 데 썼다. 정작 수주량이 늘어나는 올해 자금난이 더 심각해졌다. A사는 은행이 대출창구를 닫고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운전자금을 제때 조달하지 못해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정보기술(IT) · 자동차 분야를 중심으로 한 대기업 경기가 호조를 보이고 있는 반면 건설 건자재 금형 등 일부 중소기업들은 '돈맥경화'에 시달리고 있다. 상반기에만 은행권에 저축성 예금이 77조8000억원이나 몰렸지만,이들 중소기업에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5일 중소기업중앙회와 업계에 따르면 원자재값 급등에 따라 자금 사정이 빠듯해진 중소기업의 연체율이 높아지고,이에 따라 가동률이 떨어지면서 납품에 차질을 빚는 악순환이 재연되고 있다. 특히 정부와 금융권이 이달 들어 금융위기 초기에 내놨던 각종 중소기업 지원책들을 속속 거둬들이면서 자금난에 따른 부도 위험 수위가 올라가는 양상이다.

중기중앙회가 최근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자금 사정이 곤란하다'고 답한 중소기업 비율은 51.1%로 글로벌 금융위기의 태풍권에 있던 작년 3월(52.1%) 수준까지 후퇴했다. 중소기업 전체 대출 연체율도 1월 1.47%에서 5월에는 1.88%까지 오르는 등 증가세다.

중소기업 자금난은 후방 업체들에도 연쇄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A사 K사장은 "자금난 때문에 50여곳의 원자재 및 부품 납품업체들에 6개월이 넘게 결제를 못해주고 있다"며 "수주를 받더라도 납기를 못맞추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A사는 결국 반월공단 사옥을 매각하고 인근 시화공단에 임대로 들어갔다. 직원도 3분의 1을 내보내야 했다.

전문가들은 경제 회복세와 중소기업 자금난 사이의 간극에는 원자재값 급등세가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중기중앙회의 설문조사에서도 중소기업들은 올해 차입 자금의 46.9%를 원 · 부자재 구입에 사용했다고 응답했다. 경기 회복기에 필요한 설비투자에 26.8%,부채 상환에는 8.1%만 썼다.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다 보니 재료를 사는 데 돈을 다 써버리고 정작 기계를 제대로 돌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출 만기를 맞는다는 얘기다. 이 설문조사에서 중소기업들은 하반기 가장 필요한 자금으로 '운전자금'(56.7%)을 꼽았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