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리먼 쇼크'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건 정말 잘 된 일이었다. 덕분에 2009회계연도(2009년 4월~2010년 3월)에 매출은 줄었지만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을 올릴 수 있었다. " 지난 22일 일본 교토의 일본전산 주주총회장.나가모리 시게노부 사장(65)은 주주들에게 경영실적 보고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하드디스크 모터 분야 세계 1위인 일본전산의 지난 회계연도 매출은 5874억엔(약 7조6400억원)으로 전년 대비 3.8% 감소했다. 그러나 영업이익은 783억엔으로 50.6% 늘면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소니 파나소닉 등 일본의 전자 대기업들이 대부분 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때 일본전산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익률배증 프로젝트

2008회계연도 결산을 앞두고 일본전산의 경리 부문에선 2009년도에는 1200억엔의 적자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을 임원회의에 보고했다. 리먼 쇼크 탓이었다. 그러나 나가모리 사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당장 도서관으로 달려가 1930년대 세계대공황에 관한 자료를 모조리 찾아 읽었다. 그는 무릎을 탁 쳤다. 당시 제너럴일렉트릭(GE) 같은 회사가 위기를 기회로 더욱 큰 회사로 성장한 것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이들 회사가 대공황을 극복한 비결은 '이익률배증(WRP)'이라는 개선 프로젝트였다. 매출이 반으로 줄더라도 종전과 똑같은 이익을 내는 경영혁신이다.

나가모리 사장은 지난해 신년회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감원은 절대 하지 않을 테니 안심하라.다만 사원은 5%,간부는 10%씩 임금을 줄인다. " 직원들의 위기감 공유를 위한 조치였다. 나가모리 사장은 이어 10만명 이상의 전 사원들로부터 개선 테마를 공모한다고 발표했다. 이후 3개월간 사내에선 비용 절감 방안 등 5만건 이상의 아이디어가 나왔다. 개선안은 현장에 즉각 반영됐고 매출은 예상대로 절반으로 줄었지만 적자는 나지 않았다.

◆비상금 확보도 철저히

나가모리 사장은 만약의 사태에도 대비했다. 실제 적자가 날 경우를 가정해 비상금을 확보했다. 그는 당초 우려대로 연간 1200억엔의 적자가 난다면 1500억엔 정도의 여유자금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그만큼을 대출받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담당임원은 "지금 같은 시기에 은행에서 그렇게 큰 돈을 빌리는 건 불가능하다"며 "대출 신청액의 3분의 1 정도 나올 것 같다"고 보고했다. 나가모리 사장은 "그럼 필요액의 3배를 대출 신청하라"고 지시했다. 일본전산은 결국 2000억엔 대출에 성공했다. 물론 이 대출은 6개월 후 모두 갚았다.

일본전산은 지난 3월 말부터 전 사원들에게 임금삭감분을 1%의 이자까지 더해 지급하고 있다. 1%는 일본 시중은행 정기예금 금리의 2배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