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직장인 손성만씨(35)는 대학시절이 그리워 고려대 캠퍼스를 찾았다. 책을 겨드랑이에 끼고 찾아간 곳은 다람쥐길이었다. 하지만 손씨의 추억영상은 단번에 일그러지고 말았다. 다람쥐길이 공사로 파헤쳐져 아스팔트로 덮여 있었던 것.손씨는 "학교를 가로지르며 숲 속으로 나 있던 '다람쥐길'은 예전의 그 길이 아니었다"며 서운해 했다.

대학들이 캠퍼스 확장공사에 경쟁적으로 나서면서 학교 곳곳에 얽힌 야사(野史)와 명물들이 사라지고 있다. 대학가의 사라진 추억으로는 '잔디밭 자장면'이 대표적이다. 학생들이 자장면을 배달시켜 먹던 장소로 유명했던 서강대 '삼민광장' 잔디밭은 지난해 프랜차이즈 커피숍 등이 입주한 '곤자가플라자'에 밀려 사라졌다. 중앙대 '루이스가든'도 학생들에게 잔디밭 자장면으로 유명했던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약대 건물공사로 아예 없어졌다. 중앙대 재학생들은 "루이스가든은 다른 대학에 비해 녹지가 부족한 중앙대에 있던 유일한 잔디밭이었다"며 아쉬워했다.

이화여대의 '휴우길'도 이제는 선배들의 입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다. 휴우길은 이대 정문에서 본관 방향으로 나 있던 오르막길.경사가 가팔라 끝까지 올라가면 '휴우' 소리가 절로 나온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그러나 이 자리에 ECC 건물이 들어서면서 지금은 비교적 평평한 길로 변했다. 예전 이대 기숙사 앞 '기다림의 나무'로 통했던 느티나무도 지금은 명성을 잃었다. 기숙사에 사는 이대생을 만나기 위해 온 남학생들이 기다리던 곳으로 유명했다. 이 나무는 현재 기숙사 건물이 사회대 건물로 신축되면서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 외톨이가 됐다.

이 밖에 연세대 학생들의 첫키스 장소로 유명했던 '연신원 터'는 신학센터 건물 신축으로 사라졌다. 기업형 외식 업체들의 입주로 수십년간 학생들과 함께했던 '매점 아줌마'들도 더이상 볼 수 없다. 중앙대 학생회관 옆 '빨간벽돌' 매점은 올초 기업형 편의점으로 바뀌었다. 한 재학생은 "빨간벽돌 아주머니는 배고픈 학생들에게 외상으로 물건을 줄 정도로 인간적인 관계가 깊었다"고 말했다.

서울대 문화관 앞 연못인 '자하연'도 '오작교'라는 철제 다리가 철거되면서 미관상 좋아지긴 했으나 역사가 사라졌다는 평가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