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긍해 항공대 컴퓨터공학과 교수(54)는 아래아한글 등이 채택하고 있는 '한 · 영 자동전환' 기능의 최초 발명자다. 1997년 특허등록(특허 제123403)한 이 기능은 영어모드에서 한글을 쳐도 어절에 맞는다면 자동으로 한글모드로 전환시켜주는 것.출원 당시엔 독보적 발명품으로 인정받았지만,'골리앗' 마이크로소프트(MS)와의 13년 특허대결로 빛이 바랬다.

서울고법 민사4부(부장판사 이기택)는 23일 한 · 영 자동전환 기능의 특허권을 둘러싸고 이 교수가 한국MS를 상대로 낸 특허침해 및 손해배상소송에서 이 교수에게 패소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동일 재판부가 2년 전 MS의 특허침해 사실을 적시하는 중간판결로 양측 조정을 유도한 적이 있어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원고는 한국MS가 지난 13년 동안 특허침해로 올린 'MS오피스' 매출의 7%인 560억원을 손배배상액으로 산정했었다. 이 교수 등 원고 측은 대법원에 상고할 계획이다.

그러나 대법원이 지난해 12월 동일 사건에 대해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을 내린 바 있어 한때 '다윗(발명가)과 골리앗(대기업)'의 싸움으로 관심을 모았던 송사의 결과가 바뀔 가능성은 낮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전망이다.

이 분쟁은 이 교수가 1997년 한국MS와 MS 본사에 특허등록한 한 · 영 자동변환 기능을 채택해 줄 것을 건의했으나 무산되면서 시작됐다. 한글과컴퓨터는 이 교수의 동일 특허기술을 사들였다.

이 교수와 한국MS 측은 13여년 동안 특허침해 및 무효소송과 권리범위청구 등 서로 23건의 맞소송을 제기하면서 치고받았다. 2002년까지는 MS 측이 완승을 거두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2003년 8월 특허법원이 이 교수 등의 항소에 대해 "일부 청구항을 제외한 이 교수의 특허 대부분이 유효하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서울고법 민사4부는 2008년 양측 조정을 유도하기 위해 "MS 제품이 해당 특허의 3개 청구항을 침해했다"는 중간판결을 내리면서 사건은 급진전을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특허법원이 재차 제기한 항소사건에 대해 이번에는 MS 측 손을 들어주면서 사건은 다시 오리무중에 빠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법원은 2009년 12월 이 교수 측이 낸 상고에 대해 사건을 종결하는 '심리불속행' 기각을 결정했다. '심리불속행'은 상고이유가 인정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 더 이상 심리를 진행시키지 않고 절차를 종결시키는 제도다.

소송을 함께 진행해온 김길해 피앤아이비 대표는 "고등법원과 특허법원이 충돌하고 있는 사안에 대해 상급법원이 특별한 이유 없이 덮어버린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이번 사건은 거대 기업의 '시간끌기' 작전과 비효율적 사법시스템이 맞물려 유능한 발명가를 희생시킨 또 하나의 사례로 기록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국MS 측 관계자는 "MS워드가 채용한 관련 기술은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이고,이 교수 측의 특허내용을 도용한 바 없다"고 말했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