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김진선 강원도지사 "단체장은 지역 일꾼…당리당락보다 주민 이익 우선해야"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단체장 첫 3선 연임…퇴임앞둔 김진선 강원도지사
대담=고기완 사회부장
대담=고기완 사회부장
김진선 강원도지사(64)는 민선 광역단체장 중 처음으로 3선(12년) 연임하고 이달 말 물러난다. 3선 이상은 못한다는 지방자치법 때문이다. 새 도지사(이광재 당선자)가 뽑혔지만 그는 최근 실시된 도민 여론조사에서 70%대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그야말로 박수받고 떠나는 지사다. 그는 모든 공을 도민들에게 돌렸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도민들의 무한한 사랑에 감사한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후임 도지사가 곧바로 이어받지 못해(이광재 당선자는 재판 중) 마음이 편치 않다"는 그를 지난 14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만났다. 그의 출판기념회가 있던 날이었다.
▼임기가 얼마 안 남았습니다.
"선거(6 · 2 지방선거)가 끝나면 시간이 빨리 갈 줄 알았는데 참 길어요. 빨리 떠나야 하는데 말년 병장처럼 무척 길게 느껴집니다. "
▼후임 도지사가 2심에서 직무정지에 해당하는 유죄선고를 받았는데 이 · 취임은 제대로 이뤄집니까.
"도정 사상 초유의 안타까운 상황이 생긴건데… . 이런 상황으로 인해 강원도정이 표류하거나 공백이 생기면 도민들이 피해를 보는 것이니… 이것을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지가 고심되는 부분입니다. 지금 도지사를 마치고 떠나는 제 입장에선 마음이 무거워요. 깔끔하게 새 도지사에게 인계를 딱 해주면 마음도 한결 편할 텐데 상황이 이렇게 돼서.28일 이임식을 하고 떠납니다. 부도지사가 맡아 하겠지요. "
▼3선을 하셨습니다. 도지사는 어떤 자리이던가요.
"정치적 절차에 의해 뽑히는 선출직인 동시에 한편으론 지방정부 살림살이를 맡아 주민 생활을 보살피는 살림꾼입니다. 저는 도지사직이 '행정적 정치가'라고 봅니다. 정치든 행정이든 존재 이유는 국민과 지역 주민을 안전하게,편안하게 잘 먹고 잘 살게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도지사는 지역 발전의 기획부터 집행까지 모두 책임지는 자리입니다. 모든 행위 하나하나가 주민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지요. 특정 분야만 잘한다고 통할 수 없고 모든 분야를 고루 잘 다뤄야 합니다. "
▼이번 선거에서 초선 도지사가 많이 생겼습니다. 선배로서 조언은.
"이번에 뽑힌 사람들이 나름의 비전과 철학,정책을 갖고 역동적으로 잘할 것으로 봅니다. 남들보다 경험을 조금 더 갖춘 입장에서 얘기하자면 지방행정 경영은 지방자치법에도 나와있듯 지역을 발전시키고 주민의 복지를 증진시키는 일입니다. 도지사는 국회의원과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국회에서 정치하는 마음 자세로 해선 안 됩니다. 정당을 떠나 지역의 이익을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
▼도지사와 중앙정부는 어떤 관계입니까.
"도지사는 지역주민의 대변자이니까 지역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고 그런 차원에서 대립하는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대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명백한 것은 지방정부도 국가 속에 있다는 점입니다. 지방정부의 역할과 기능의 총합으로 이뤄진 것이 국가 전체의 성과가 되는 것이죠.그런 면에서 지방정부와 중앙정부는 현실적으로나 제도적으로나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충분히 소통하고 대화 · 협력하면 해결 못할 일도 없습니다. 지방정부 수장이 국회에서 정치인들이 하는 것 같은 정치를 해선 안 됩니다. "
▼지방의회의 여소야대 구도에 대한 우려도 나오는데요.
"제가 실제로 해보니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지방자치를 처음 할 때 정당 공천 때문에 중앙정치에 예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어요. 하지만 지방정부 운영은 지역의 가치가 대접받고,지역의 이익이 존중되는 방향으로 갑니다. 여야 구분없이 지역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에는 한 목소리를 내고,여당도 지역에 손해가 될 때는 정부나 중앙당에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는 것이 특성입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서로 대화하고 소통해서 잘 조정해 나갈 과제들은 상당히 많습니다. "
▼도지사끼리 뭉쳐 당과 정치행위를 할 가능성은 없나요.
"생각보다 염려할 수준까지는 진행되거나 전개되지 않을 겁니다. 우리가 지역주민 의사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광주 · 전남지사도 민주당 소속이면서 영산강의 경우 당론과 반대 주장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도지사로 당선돼서 10년 야당(김대중 · 노무현 정부),2년 여당 도지사를 했습니다. 여당 도지사가 됐다고 해서 갑자기 일이 확 잘 풀리거나 엄청난 지원을 받는 일도 없어요. 오히려 섭섭한 구석도 있었죠."
▼서울엔 자주 왔습니까.
"자주 오게 됩니다. 지자체장들은 중앙정부가 추진하는 산업단지,연구단지나 예산 등을 자기 지역에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해야 합니다. 기업 유치와 관광 투자 등은 도지사들이 직접 뛰어야 하는 일이지요. 이제 도지사는 '세일즈맨'입니다. 기업 최고경영자(CEO) 마인드를 갖고 투자를 유치하고 사업을 벌여야 합니다. CEO가 직접 발로 뛰어야 신속하게 결론을 보는 경우가 많아요. 지역 주민들은 이런 실적에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시장과 도지사직이 간단한 자리가 아닙니다. 미리 연습할 수도 없는 것이고요. "
▼평창 동계올림픽유치위원장이신데,어떻게 되고 있나요.
"올림픽 유치는 제 개인적 꿈에서 시작됐고,도민적 염원이 됐고,국가적 과제가 됐습니다. 꼭 유치해야 합니다. 중앙정부도 특별한 관심을 갖고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습니다. 유치위원장은 당연직이기 때문에 후임 도지사가 넘겨받게 될 겁니다. 하지만 저의 노하우와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면 제가 어떤 자리에 있든 마다하지 않고 도울 자세가 돼 있습니다. "
▼가족들은 시원섭섭해하나요.
"집사람과 애들은 제가 36년 공직에 봉사하는 동안 제약된 틀 속에서 함께 보냈어요. 남편과 아버지를 공적인 일에 다 뺏긴 셈이었죠.이제 곧 퇴임해 자연인이 되니까 많이 기대하는 것 같아요. 그게 얼마나 갈진 모르겠습니다만.일없이 노는 사람 되면 집에서 구박받는 신세가 되지 않을까 모르겠습니다. "
▼퇴임하더라도 지방자치 노하우를 나라를 위해 더 써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제 의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우선 좀 쉴 생각입니다. 자연인으로 돌아가 보람있는 일에 참여해볼까 합니다. 이제 최고의 가치는 예술,문화,생태 같은 부분이라고 봅니다. 여기에 관심을 갖고 민간 차원에서 활동하고 싶습니다. "
▼최근 도민 여론조사에서 지지도가 70%를 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도민들이 잘 봐주셔서 그렇지요. 감사할 따름입니다. 박수받고 떠날 수 있어 너무 큰 복입니다. "
▼도민들에게 작별인사를 해주시죠.
"12년은 엄청난 시간이었습니다. 저도 물론 열심히 하려 했지만 도민들은 제가 한 것보다 더 많이 저를 사랑해주고 과분한 신뢰를 보내주셨어요. 그래서 너무 감사합니다. 강원도에서 안 다녀본 동네가 없을 정도로 구석구석 참 많이 누볐어요. 같이 붙들고 울고 웃고.주민들 삶의 현장에 대해 웬만한 시장,군수보다 많이 알기에 어느 누구보다 복받치는 게 있습니다. 그러나 회자정리라지 않습니까. 기상 예보에서 비가 온대도,눈이 온대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걱정이었는데 이제 짐을 벗습니다. 도민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이 대목에서 김 도지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정리=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김진선 지사는…
김진선 강원도지사는 1946년생으로 강원 동해 출신이다. 1974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홍천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강원도와 내무부(현 행정안전부)를 오가며 정통 관료의 길을 걸었다. 영월군수,강릉시장,강원도 행정부지사를 지냈고 1998년부터 강원도지사를 역임했다.
중학교 졸업 후엔 집안형편이 어려워 고교 진학을 포기하고 호텔에 취직하려 했으나 은사의 도움으로 고교에 진학했다. "2851원이 든 월급봉투를 통째로 내놓으시면서 반드시 고등학교에 가라고 하신 은사가 안 계셨다면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고.김 지사는 최근 출간한 책 제목도 그래서 '자장면과 2851원'으로 붙였다. 어떤 운명이라는 게 있는 것 같다는 말을 김 지사는 자주한다.
임기 동안 교통망에 집중 투자해 수도권 접근성을 높인 것이 최대 성과로 꼽힌다. 취임 당시 3조원대였던 지방 재정을 지난해 8조6000억원까지 끌어올렸고 수도권 기업과 외자 유치 실적도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