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세종시 국회 뜻대로"…기업 "이제와서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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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재계 "여야 합리적 절충안 마련해야"
이명박 대통령이 14일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국회 표결을 공식 요청했다. 동시에 표결 결과를 존중하겠다고 밝혔다. 이로써 정부 차원의 수정안 추진 내지는 관철 작업은 중단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세종시 투자를 결정한 삼성 한화 롯데 웅진 등은 "국회에서 결론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 보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수정안의 국회 통과 여부가 더욱 불투명해졌지만 세종시 문제가 여야 간 첨예한 정치 현안이라는 점 때문에 섣불리 얘기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하지만 주요 기업들 내부에는 두 가지 기류가 흐르고 있는 것으로 감지된다. 우선 세종시 수정안 폐기에 대비한 대안 모색을 서두르겠다는 움직임이다. 이 경우 투자계획을 전면 재조정해야 할 뿐만 아니라 대체부지 마련도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수정안 통과를 전제로 그린에너지와 헬스케어 사업 등에 총 2조5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한 삼성은 "이제 와서 어떡하라고…"라며 곤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장 세종시 투자 규모에 해당하는 165만㎡의 넓은 부지를 구할 데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기존 사업장의 여유 부지를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계열사와 관련 사업들을 세종시 한 곳에 모으는 데 따른 시너지는 기대할 수 없다. 여기에 내년부터 유기발광다이오드(LED) 조명사업에 본격 뛰어들기로 한 삼성LED는 올 하반기로 예정한 세종시 투자를 결정하지 못한 채 경쟁사들의 시장 확대를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다. 얼마 전부터 조명 시제품을 판매하고 있는 이 회사는 양산시설 확보가 시급한 실정이다.
연내 세종시에 국방과학미래연구소를 지어야 하는 한화 측도 속이 타들어가기는 마찬가지다. 한화 관계자는 "하루라도 빨리 투자 시기를 앞당겨야 하는 상황이지만 국회 논의가 얼마나 길어질지,최종 결론이 어떻게 날지 등 모든 것이 안갯속"이라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두 번째 기류는 여야 간 극적인 절충과 합의 과정을 통해 수정안이 기본 뼈대를 간직한 채 국회를 통과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다. 이 경우 화급을 다투는 투자사업은 대체부지 확보를 통해 추진하되 중장기 프로젝트는 수정안 통과 여부를 봐가며 결정할 수 있다는 것.주요 기업들이 당장 투자계획을 철회하는 대신 "국회 결정을 기다려 보겠다"고 말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2020년까지 세종시에 1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한 롯데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국회에 표결을 요청한 것은 국회가 민의를 모아 국가 중대사를 잘 처리해 달라는 뜻으로 해석된다"며 "여야가 한발씩 물러나면 수정안을 전제로 좋은 그림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국회가 끝내 원안을 고수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릴 경우 세종시의 자족 기능은 현저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경제계의 지배적인 관측이다. 원안상 산업부지 규모는 80만㎡에 불과해 삼성이 필요로 하는 부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여기에 수정안에 들어간 △원형지 개발 허용 △투자 인센티브 확대 △과학벨트의 중이온가속기 설치까지 무산될 경우 세종시는 아무런 투자 메리트가 없는 시골도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세종시가 원안대로 간다면 기업들과 투자 시기를 조율할 수 없는 만큼 수정안을 중심으로 하루빨리 가부가 결정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