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동반 모임 끝에 말로만 듣던 경기도 미사리 라이브카페에 들렀다. 유명가수가 출연한다는 곳을 찾았으나 정작 그 가수는 나오지 않았다. 속았다 싶었지만 별 수 없이 자리잡고 앉았을 때 무대에 선 사람은 지세희라는,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여가수였다. 우람한 체격에 청바지와 헐렁한 검정 남방 차림으로 등장한 그는 웃으며 이렇게 운을 뗐다.

"제가 나오면 다들 비슷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노래라도 잘해야겠다' 아니면 '노래를 얼마나 잘하길래'라는 거지요. " 자신의 몸매에 대한 관객 반응을 읽고 선수를 침으로써 웃음을 이끌어낸 그는 알려지진 않았지만 음반도 냈고 피처링(다른 가수 음반에 참여하는 것)도 한다며 자기 소개를 마치곤 노래를 불렀다.

'애인 있어요''잊지 말아요''하늘에서 남자가 비처럼 내려와''거위의 꿈' 등을 부르는 솜씨는 기대 이상으로 뛰어났고 관객의 호응 또한 높았다. 공연이 끝난 뒤 밖으로 나왔더니 그는 무대에 섰던 그 차림 그대로 오토바이를 타고 있었다. 처음 나왔을 때 헬멧에 머리가 눌렸다길래 무슨 말인가 했던 의문이 풀린 셈이었다.

뛰어난 가창력에도 불구,뜨지 않은 이유는 알 수 없다. 외모 탓인지,댄스가수가 아니어서인지,또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분명한 건 숱하게 겪었을 어려움에도 좌절하지 않고 굳건히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명해지는 일이 쉽진 않겠지만 포기하지 않고,스스로를 포장하며 세상과 타협하는 법도 배우면 언젠가는 보상받을 것이다.

씩씩한 언더가수의 모습은 든든하고 믿음직했다. 고단한 삶에 지친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는건 뛰어나고 잘난 인물이 아니라 역경에 주눅들지 않고 제 길을 걷는 그같은 이들이다. 남자도 그렇지만 여자는 특히 개천의 용이 되기 힘들다. 유혹은 많고 툭하면 포기하라는 압력 또한 거센 까닭이다. 남자와 다른 이중적 잣대를 들이대는 수도 흔하다. 똑같이 적극적이어도 남자는 높이 평가하고 여자는 악착스럽다며 폄하하는 게 그것이다. 회식에 빠지면 "여자라서"라며 헐뜯고,끝까지 있으면 "여자가"라며 흉본다.

여성 스스로 어떤 삶을 택하느냐 하는 건 전적으로 개인의 몫이다. 누구는 이문열 작 '선택'이 지향하는 현모양처형 삶을 지향하고,누구는 힐러리 클린턴 장관같은 치열한 사회적 삶을 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랏일을 맡길 여성을 발탁하는 기준에 특정한 여성상을 적용하려 드는 건 납득하기 힘든 일임에 틀림없다.

일하는 여성의 첫째 기준은 이미지가 아닌 능력이 돼야 한다. 능력(콘텐츠)에 대한 검증 없이 주위의 아는 인물 가운데 스펙 혹은 이미지 중심으로 발탁하면 이중삼중으로 손해 나기 십상이다. 일을 제대로 못하니 조직의 손해요,다른 여성들의 기회를 뺏으니 손해요,자라나는 세대에게 역할모델을 제시할 수 없으니 손해다.

MB정부는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지금까지 이뤄낸 경제적 성과를 바탕으로 젊은층과 여성을 포함한 각계각층을 통합,위대한 정부로 나아갈 수도 있고 분열된 상태를 아우르지 못해 절반의 성공만 이룬 채 끝날 수도 있다. MB정부는 이번 정권 들어 여성에 대한 인식이 퇴보했다거나 심지어 마초적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발상의 전환은 쉽지 않다. 그러나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하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 제자리걸음은 걷고 있는 만큼 후퇴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할 때를 모르고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주저앉거나 무너진다.

어디서건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면 기존의 사고와 시각을 그야말로 확 바꿔야 한다.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엘리트 코스를 밟은 여성적 이미지의 인재도 좋지만 바닥부터 다진 현장경험자도 찾아봐야 한다. 오프라 윈프리가 대중으로부터 얻어내는 공감은 어린 시절 온갖 고난을 헤치고 성장하면서 생겨난 강인함과 사물에 대한 폭넓은 시각 덕일 것이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