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경기가 좋아지면 시중 유동성을 흡수하는 출구전략이 시행될 테고,경기가 좋지 않으면 부양책이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따라서 하반기 증시는 오를 것 같으면 빠지고,빠질 듯하면 오르는 박스권 장세가 예상됩니다. 자산가치와 수익가치가 높은 종목을 골라 투자하면 내년쯤 주가가 턴어라운드할 것입니다. "

'가치투자의 전도사'로 유명한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부사장(46)은 14일 하반기 증시를 '무방향 박스권 장세'로 진단했다. 출구전략 등으로 인해 주가 급등도 없고 유럽 재정위기 등에 대한 글로벌 공조체제 덕에 시스템 위기에 따른 패닉도 없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 부사장은 "박스권 장세는 내재가치가 높은 종목을 발굴해 저점 매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욕심을 내지 않고 두려움만 이겨낸다면 경기가 회복할 때 상당히 큰 초과수익을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톱 다운'(top-down · 거시경제 위주 분석)보다는 '보텀 업'(Bottom-up · 종목위주 연구) 방식으로 접근할 것을 권유했다. 숲보다는 나무를 보라는 얘기다.

2008년 하락장과 작년 상승장에서는 테마와 성장이라는 '드림'이 투자의 대세였다면 올 하반기에는 꿈에서 깨어나 만질 수 있는 것,즉 '현실'중심의 투자 패러다임을 가져야 한다는 진단이다.

이 부사장은 "현금이 많고 이익도 많이 내는 '전통 가치주'에 관심을 갖고 연구 · 분석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투자 종목을 고르는 방법으로 크게 계량적 분석과 정성적 분석 2단계 기법을 제시했다. 계량적 분석은 가치투자의 2대 요소인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따지는 것.자산가치는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이하,수익가치는 주가수익비율(PER) 5~6배 이하인 종목을 20여개 고른 뒤 정성적 분석을 통해 4~5개 종목으로 압축하라는 조언이다.

가령 시가총액 1조원인 기업의 PBR가 1배 이하라면 당장 망해도 청산가치가 현재 주가 수준을 넘는다는 뜻이고,이 기업의 PER가 5배라면 연간 2000억원의 수익을 낸다는 얘기다. 은행 예금금리가 연 3%인 점을 감안하면 시총의 20%에 달하는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기업 주식은 매우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라고 이 부사장은 설명했다.

정성적 분석도 그가 중요시 여기는 투자 종목 선정 방법이다. 사업 전망이나 비즈니스 모델,시장 경쟁력과 진입장벽,경영자의 자질과 도덕성,지배구조 등을 살펴보라는 얘기다. 그는 "정성적 분석은 일반투자자는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에 자신이 종사하는 분야나 잘 알 수 있는 분야를 정해서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부사장은 "현재 주가 수준을 감안할 때 자산가치 측면에서는 내수주와 유틸리티,음식료 관련주가 저평가돼 있다"며 "이들 업종은 원자재 가격과 환율이 안정되면 실적이 턴어라운드하면서 시장에 부각될 것이므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보기술(IT)과 부품 · 소재 · 장비업체 등은 수익가치와 성장가치를 겸비하고 있어 매력적이라고 덧붙였다.

자산배분 기준은 주식,채권(정기예금 · 보험 · 현금 포함)과 부동산을 각각 33%씩 나눌 것을 권했다. 주식에 투자할 경우 그 중에 30%는 가치주에 3~4년 이상 투자하고,나머지 70%는 해외 주식형펀드나 원자재펀드 등 자신의 성향에 맞게 하되,투자원칙을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고 이 부사장은 강조했다.

최명수 기자 m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