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10.06.11 09:22
수정2010.06.11 09:22
결혼 6년 만에 첫 아이를 임신한 오모씨(34세). 태아가 10주 되었을 무렵, 심각한 척추 디스크 증상을 겪게 되었다. 장시간 앉아서 근무하는 은행원이었던 그녀는 병가를 내고 집에서 쉬었으나, 눕고 앉고 일어서는 자세 자체가 힘겨워 당장 척추디스크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태아가 임신 11주 만에 자연유산 되는 바람에 척추 디스크 수술을 할 수 있었다. 아기가 자연유산이 되어 임신중절의 아픔을 피하긴 했으나, 오씨는 평소 허리가 아픈 증상에 좀 더 관심을 갖고 미리 검진을 받았더라면 임신과 척추 수술이 겹치는 불행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란 뼈아픈 후회를 하고 있다.
3살과 2살 남매를 두고 또 연년생으로 셋째를 임신하게 된 박모씨(37세). 이미 두 아이가 예상치 못한 임신으로 태어나 조심에 또 조심을 기해야 했지만 덜컥 셋째가 생기고 말았다. 이미 연년생인 두 아이의 양육만으로도 피로와 스트레스가 가중되었던 그녀는, 결국 임신 22주 만에 조산을 하고 말았다. 아기는 심각한 저체중아로 인큐베이터에서 2달 반 동안 지내야 했고, 폐와 망막 등 여러 기관이 미성숙해서 태어나는 바람에 입원 기간 중에도 여러 번 생명의 위기를 넘겨야 했다. 다행히 건강한 몸으로 퇴원을 했지만 박모씨는 38개월, 23개월, 6개월(교정연령 3개월) 짜리 아이 셋을 키우느라 거의 탈진 상태다.
최근 혼전 임신을 하고 결혼하는 연예인들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일반인들 중에서도 혼전 임신을 한 상태에서 결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다보니 혼전 임신이 상당히 자연스런 일인 양 호도되고 있는 것 같아 걱정된다. 이는 비단 미혼 커플이나 예비 부부들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이미 첫째나 둘째 아이를 갖고 있는 기혼 부부들 사이에서도 예상치 못한 임신이 상당히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국내에는 정확한 통계가 없지만 미국의 1999년 CDC(The Center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연구 결과에 의하면, 모든 임신의 약 50% 정도가 계획되지 않은 임신이라고 한다. 비계획 임신의 경우, 태아가 건강하게 태어나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서두에서 소개한 사례들처럼 산모 자신의 건강에 위협적인 일이 발생하거나, 또는 태아가 건강하지 않게 태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터울 조절에 실패하면 육아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계획 임신이란 어떤 의미?
대부분의 신혼 부부들은 2세 계획이라면 우선 재무계획부터 세운다. 지금 현재 갖고 있는 자산이 얼마니까, 맞벌이를 해서 어느 정도 규모로 저축을 해놓고 자녀를 갖겠다는 식으로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이것은 반쪽 짜리 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여성의 가임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면서 불임이 되는 일이 왕왕 있기 때문이다. 요즘 워낙 결혼이 늦어지고 고령 임신부가 많아 30대 중반도 쉽게 임신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제로는 20대부터 불임이 되는 여성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추세이며, 30대에 들어서면 여성들의 가임 능력이 줄기 시작한다. 따라서 신혼부부의 임신 계획은 자녀 양육을 위한 재무 계획과 동시에 부부 모두가 임신이 가능한 상황인지, 건강상의 문제가 없는지를 총체적으로 고려한 후 임신과 출산 시기를 결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기혼 부부들도 마찬가지이며, 계획 임신은 불법적인 임신 중절을 막기 위해서도 매우 필요하다.
건강한 산모가 건강한 태아를 낳을 수 있는 계획 임신, 어떻게 해야 할까?
2세를 계획하고 있는 가임 여성은 우선 자궁과 난소 검사를 통해 기형이 있는지, 자궁 근종과 종양이 있는지 알아봐야 한다. 이러한 질환은 태아의 사산, 유산, 조산의 원인이 될 수 있고, 임신 기간 중에는 치료가 어려워 산모와 태아의 건강과 생명 모두를 위협할 수 있다. 또, 조기 폐경 여부를 살펴서 불임 가능성을 체크해야 시기를 놓치지 않고 임신에 성공할 수 있다.
심장질환이나 고혈압 등은 임신 기간 중 산모의 생명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반드시 확인을 해야 한다. 갑상선, 결핵, 류마티스 등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 유전성 질환의 가족력이 있는 경우, 관절, 간질, 우울증 등을 앓고 있어 장기적으로 약을 먹고 있는 경우는 결혼하고 임신을 계획하는 단계에서부터 산부인과 전문의의 상담을 받아야 한다. 간이나 신장 기능 장애는 조산이나 태아 사망과 관련이 있으며, 당뇨병은 태아의 여러 가지 선천성 기형, 거대아, 임신중독증, 태반 조기박리, 조산을 유발할 수 있고, 방광염이나 요도염 등은 조기 진통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이밖에 풍진, 매독, AIDS 등의 감염성 질환은 태아에게 전염되거나 기형 등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사전에 꼭 체크하여 예방 주사를 맞거나, 치료를 하거나, 임신을 피해야 한다. 이 외에도 음주, 흡연, 영양 불균형 상태, 체력 저하 등 본인의 습관이나 건강 상태를 점검하고, 직업상 유해 물질에 노출되는 환경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여성들이 자신의 임신을 자각하는 시기는 보통 임신 5~6주 정도 되었을 때이다. 이 시기는 태아의 중요한 기관들이 이미 형성된 시기로, 계획 임신이 아니라면 산모는 태아 기형과 유산을 유발할 수 있는 흡연, 음주, 약물, 유해물질 등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또한, 태아의 신경계결손을 예방할 수 있는 엽산도 임신 3개월 전부터 섭취해야 효과가 있어 계획 임신은 매우 중요하다.
자녀 양육은 부모, 특히 엄마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 내 소중한 아이를 위한 희생을 미리 예상하고 준비하면 더 큰 보람과 기쁨으로 승화될 수 있다. 양육환경과 부부의 건강 상태를 모두 고려한 계획 임신은 산모가 건강한 상태에서 건강한 아이를 낳게 해줄 수 있을 뿐 아니라 더욱 만족스러운 육아 생활을 할 수 있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글 / 인권분만연구회 회장 산부인과 전문의 김상현)
장익경기자 ikjang@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