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증후군이 아니더라도 축구의 마력에 대한 얘기는 많다. 노동의 중요성을 강조한 독일 신학자 도로테 쇨레에게 누군가 "아이들에게 행복이 무엇인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대답은 이랬다.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갖고 놀 수 있는 공을 던져 줄 겁니다. " 이탈리아의 좌파 이론가 안토니오 그람시까지도 축구를 '야외에서 행해지는 인간적 충실함의 완성본'이라고 했다.
찬사만 있는 건 아니다. 따지고 보면 멀쩡한 젊은이들이 공 하나를 놓고 90분간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울 수도 있다. 사소한 반칙에 주먹다짐을 하거나 자기편끼리 공을 돌리며 시간을 끄는 치사함에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한다. 그래서 축구를 '비열한 개싸움'이라고 깔아뭉갠 학자도 있다. 좀 다른 문제지만 파시즘,나치즘에 이용당한 적도 있다.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 개최와 우승은 파시즘의 승리로 선전됐다. 193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독일팀은 오른팔을 쭉 뻗는 인사를 하면서 나치를 세계에 알렸다.
남아공월드컵이 오늘 개막한다. 축구팬들은 한없이 들떠 있겠지만 축구를 즐기지 않는 이들에겐 지루한 한 달이 될 수도 있다. 영국의 더 타임스는 축구중계에 남편을 빼앗긴 '월드컵 과부'들이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을 다뤘다. 경기시간에 맞춰 여성 취향 영화를 집중 편성한 TV 채널을 보거나 로비 · 식당 · 객실 어디서도 월드컵의 '월'자도 못꺼내게 한 '월드컵 벗어나기'숙박 패키지를 마련한 호텔을 찾는 등의 묘안을 소개했다니 재미있다.
남자들이 정신없이 축구에 빠져드는 이유는 원시 수렵 시절 사냥감을 쫓던 버릇이 뇌 속에 각인돼 있기 때문이고,규칙도 잘 모르는 여자들이 기꺼이 응원에 나서는 데는 사냥을 잘하라는 격려의 뜻이 담겼다는 해석도 있다. 좋든 싫든 이제 지구촌은 월드컵 열기에 휩싸일 것이다. 밤잠 설쳐가며 맘껏 즐기는 일만 남았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