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랑 같이 읽은 동화책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레오 리오니의 '프레드릭'이다. 대부분의 들쥐들은 나무 열매나 밀과 짚을 모으느라 밤낮 없이 일하지만 프레드릭은 항상 먼 곳을 바라보거나 빈둥거리는 들쥐이다. 친구 들쥐들이 프레드릭에게 왜 일을 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그는 "나도 일하고 있어.햇살을 모으는 중이야"라든지 "색깔을 모으고 있어" 혹은 "이야기를 모으고 있어"라고 대답하곤 한다. 계절이 지나 춥고 어두운 긴긴 겨울이 오고,양식도 거의 동나 누구도 말하려 하지 않을 때,프레드릭은 친구들에게 따뜻한 햇살과 파란 덩굴꽃,노란 밀집 속의 붉은 양귀비꽃,초록빛 덤불 이야기를 지쳐 있는 친구들에게 들려준다. 그동안 모은 양식을 보여준 것이다. 이야기가 끝나자 들쥐들은 "프레드릭,넌 시인이야"라며 감탄한다.

예술가들에 대한 우리들의 이미지 또한 프레드릭 같지 않을까 생각한다. 조직생활을 싫어하고 많은 시간을 빈둥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작품에 열광하며,때로는 위로받기도 하고 감동한다. 역사 이래 위대한 예술가들에 대한 우리의 경외감 또한 엄청나지 않은가. 그들은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라고 생각하는 것을 비틀고 뒤집어 보면서 우리에게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어주고,이미 존재하던 것들의 개념을 재해석하면서 새로운 눈을 뜨게 해준 사람들이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위대한 철학자이며,영원을 꿈꾸는 사람들이다. 예술가에게 있어 창의성은 생명이다.

지금 이 시대는 우리에게 창의적인 발상을 요구하고 있다. 기업은 치열한 글로벌 경쟁으로 시장에서 소비자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려워졌고,그래서 변화와 혁신적 마인드로 창의성을 가진 인재를 필요로 한다. 교육 또한 창의적인 인간을 길러내기 위해 시험제도와 교과내용 등을 바꾸며 변화에 대한 목소리가 다급하다. 스포츠 세계에서조차 기록 경신을 위해서 창의적인 코칭이나 기술을 시도하며 새로움을 열어가고 있다.
이런 창의성은 어떻게 해야 얻을 수 있는가? 우리 모두가 예술가처럼 살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조직생활에 치여 생각의 여유가 없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특히 법과 제도,정책을 다루는 조직일수록 영향력이 크므로 더 창의적이어야 하며,깊이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그런 조직일수록 관행대로,시간에 쫓겨 또는 과다한 업무 때문에 창의성이 말살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생각할 수 있는 시간과 상념의 공간,그리고 즐겁게 몰입할 수 있는 자율성이 주어져야 창의적일 수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몰입에서 만들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세상은 창의성을 요구하지만 정작 창의성을 발휘하기는 어렵다.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갖는 빈둥거림(?)에 대한 관용이 필요하다. 물론 내가 말하는 빈둥거림이란 최선을 다한 이후 치열한 사고의 자유와 여유를 말하는 것이다.

문정숙 금융감독원 부원장보 mooncs@sm.ac.kr